<>.우리 해외건설 총수주고는 지난 94년말 1천억달러를 돌파했다.

해외건설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한 지난 64년이래 30년만에 이룩한
쾌거였다.

현장 사나이들의 피와 땀, 불굴의 투지, 도전정신이 빚어낸 신화다.

30년의 역사에는 숱한 일화가 숨어있다.

사막과 정글에서 남긴 해외건설의 이면사를 소개한다.

<>.중동건설특수가 한창이던 무렵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모슬렘교도로
변신한 건설전사들이 있었다.

동부건설(당시 미륭건설)은 81년4월 이슬라믹 올림픽개회를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발주한 막카스포츠시티공사를 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약체계가 유럽식이었던 탓에 동부건설은 공정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해 독일업체에 공사를 넘겨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

자칫 잘못하면 막카공사뿐아니라 사우디에서 더이상 추가공사를 수주하지
못할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당시 이 현장을 이끌고 있던 홍관의 동부건설사장은 발주처를 설득해야
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동분서주하던 홍씨는 마침 주감독관이 막카시내의
노부모집을 재단장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순간 그는 잘만하면 주감독관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노부모집개축을 실비로 해주겠다고 제의, 가까스로 승낙을 얻어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는 뜻하지 않은 문제에 봉착했다.

개축을 위해서는 막카시내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당시 막카시내는 모슬렘교도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심끝에 그는 공사인부를 모슬렘교도로 변신시켜야겠다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일부인부는 휴가기간을 이용해 서울 한남동 모스크에 나가 교리교육을
이수하고 세례를 받았다.

나머지 인력은 사우디 제다의 한국인 이맘(주임목사)으로부터 교육을
받아 모슬렘인 증명서를 어렵사리 얻어냈다.

이렇게 급조된 모슬렘공사팀은 주감독관의 부모집을 개축할 수 있게 됐고
서울본사는 주감독관을 초청, 칙사대접을 했다.

그에게 친근감을 주기위해 국내 현장 시찰때는 직원들이 전통아랍복장에
슬리퍼를 신고 도열, 환영분위기를 돋우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감독관 부모집개축공사장에 투입된 근로자들은 날마다 5차례씩 모스크에서
살라(기도)를 해야했고 라마단(금식기간)동안엔 주위눈치를 보며 숨어서
식사를 해야했다.

동부건설은 이같은 정성을 들인 끝에 막카스포츠시티공사를 수주, 무난히
끝낼 수 있었다.

<>.중동건설 시장개척에는 강원도 매까지 한몫을 했었다.

78년 봄 어느날 주사우디아라비아 한국대사관의 건설관 허재영씨에게
사우디도시지방성의 마지드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한국을 다녀온 후 형인 칼리드 국왕에게 귀국보고를 했더니 한국의
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시하더라는 것이었다.

한국산 매를 구할 수 없겠느냐는 것이 마지드 장관의 전화요지였다.

허씨는 즉시 서울에다 "사우디국왕 한국산 매 사육 희망, 조속한
조치요망"이라는 긴급내용을 타전했다.

매수배와 송출을 놓고 청와대까지 나서게 됐고 당시 신형식 건설부장관이
책임을 맡게 됐다.

건설부는 신문에다 "매 긴급구함"이라는 광고를 내는 한편 창경원의
동물원 등 매가 있을 만한 곳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칼리드 국왕이 원하는 사냥매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를 못구해 노심초사하던 신장관에게 마침 건설부 지방청회의에
참석했던 원주청장이 훈련된 사냥매를 구할 수 있다고 보고해왔다.

우여곡절끝에 사냥매를 구한 건설부는 사우디로 송출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김포세관이 동물반출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

사냥매는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상 반출금지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때문에 긴급관계기관 대책회의가 열렸고 결국 김포를 통해 매를
내보내되 세관장은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사우디건설관 허씨는 그해 6월10일 오전 7시 눈빠지게 기다리던 한국산
매를 제다공항에서 건네받았다.

그러나 문제가 또 생겼다.

허씨는 10시발 리야드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으나 공항직원에게 걸렸다.

이 직원은 사우디관계법상 매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없게 돼있다며
탑승을 불허했다.

그러나 칼리드 국왕에게 진상할 매라는 말을 전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공항직원들은 특별리무진까지 동원해 매를 비행기로 "모셨다".

그날 오후 5시 사우디왕궁에서 매를 전달받은 칼리드 국왕은 "내가
좋아하는 매를 보내준 한국정부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마침 그 자리에는 황태자를 비롯해 22명의 각료들이 국무회의 참석차
대기중이었다.

매선물의 효험은 의외로 컸다.

몇달 뒤 건설장관이 일정없이 사우디를 방문, 급하게 국왕 알현을
신청했는데 이례적으로 수락됐던 것이다.

<>.74년 회교의 성지순례기간인 하지가 시작되는 12월20일을 40여일
앞두고 삼환기업이 시공중이던 사우디 제다시의 미화공사장에는 날벼락같은
발주처의 요청이 날아들었다.

제다공항에서 성지인 메카쪽으로 향하는 2km의 공항로확장공사를
40일이내에 완공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사우디진출 초기 아직 확고한 시장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있던 삼환기업
으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발주처의 요구에 응해야만 했다.

일단 OK해놓고나자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상식에 비춰 아무리 밤샘작업을 해도 2km 도로를 40일에 확장하기란
불가능했다.

3일간 밤을 새는 대책회의끝에 삼환기술진은 "8시간 3교대 24시간
계속공사"라는 초비상체제에 돌입키로 했다.

장비 인력이 모두 투입되고 가로등도 없는 도로공사장에 횃불을
밝혀 장장 2km의 불야성을 이뤘다.

그러던 어느날 외국방문후 야간에 제다공항에 내린 파이잘 사우디국왕이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됐다.

국왕은 그 자리에서 제다시 미화2차공사도 삼환에 주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 공사는 수의계약으로 삼환에 돌아갔다.

국왕이 공사장을 목격하게 된 것은 평소 한국인의 성실과 근면을 높이
평가해온 모하메드 사이드 하산 화시 제다시장이 자신의 시정추진력도
과시할겸 일부러 국왕일행이 공사장옆을 지나도록 행차길을 조정해놓았기
때문이다.

<>.80년5월 이란의 테헤란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신화건설과 공사발주처인
NPC 이란국영회사간에 최종상담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란측은 최종도급액을 깎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었다.

그날 합의를 보지 못하면 공사를 취소하고 신화측이 낸 은행지불보증을
돌려서 보상하게 하고 대표단출국을 못하게 하겠다는 등의 협박조였다.

그 와중에 느닷없이 최상남(최상남)당시 신화건설측 대표는 "여러분
당나귀를 아십니까.

당나귀는 유난히 큰 귀와 큰 <><>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나귀의 상징인 큰 귀와 <><>을 잘라낸다면 당나귀의 몰골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신네들은 우리가 제시한 견적서에서 중요한 부분을 다 깎아버려
마치 귀 떼고 <><>을 뗀 당나귀꼴로 만들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죽어도 그렇게는 못합니다"

험악한 회의장엔 순간 폭소가 터져나왔고 분위기는 부드러워졌다.

이후 신화측의 요구를 거의 1백% 이란측에서 받아들였다.

최대표는 코너에 몰린 절대불리한 상담에서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역전시켰던 것이다.

<>.건설업체엔 미신과 터부도 많다.

완성된 입찰서류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중역부터 순서대로 전직원이
밟고 지나가도록 하는 것은 낙찰을 기원하는 신성한 의식의 하나다.

회사의 명운을 좌우하는 큰 입찰을 준비하는 응찰팀의 마음은 마치
옥동자를 기원하는 부녀자처럼 숙연해지는 것이다.

또 서류뭉치를 싸놓고는 1주일동안 목욕도 안한 몸으로 그위를
깔아뭉개기도 한다.

입찰일을 보름정도 앞두게 되면 이발 면도 목욕 모두 금기이다.

복과 비밀이 새나가는 것을 막는다면서 입찰보름전부터 숙소겸
준비사무실에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한다.

식사도 배달해 먹고 식기도 내보내지않고 쌓아둔다.

열사의 사막에서도 이런 미신과 터부를 지켰으니 응찰팀의 위생상태는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은 그런 행위를 미신이나 터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회교율법을 원리원칙대로 지키기로 소문난 모슬렘교의 종가
사우디아라비아.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도 수단도 원천봉쇄된 이곳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은
술과 보신탕까지 즐길 수 있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짜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사우디 사막에는 곳곳에 야생개들이 무리지어 다니고 있었다.

한국인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사장 인근엔 공사가 진행될수록 공기에
비례해서 야생개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현장 주방이나 쓰레기통에 접근하는 개들을 우리 근로자들이 닥치는대로
잡아먹어버렸다.

보신탕을 끓이는 과정도 잡는 조, 양념조, 끓이는 조로 나눠졌다.

보신탕에 으레 따르게 마련인 술문제도 식사후 제공되는 후식용 과일을
모아두었다가 빈기름통에 설탕과 함께 넣어 빵구울때 쓰는 이스트로
발효시키면서 해결했다.

< 고기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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