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여론의 압력을 받으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행정기관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고, 규제를 강화하고싶은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예산과 인력부족을 항상 느끼고 있기 때문에 행정부서들은 이를
규제 도입을 통해 우회하려는 유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재경원 예산실에 돈을 구걸할 필요도 없고, 총무처에 자리를
늘려 달라고 애원할 것도 없이 규정이나 지침하나로 일도 하고 권한도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란 것은 공무원들에게 참으로 편리한 요술방망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공무원들이 규제를 좋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공무원조직은 그냥 놓아두면 저절로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현상이다.

그래서 어느나라 정부나 따로 조직과 인원을 관리하는 부서를 두고
일선 행정부서들이 마음대로 인원을 늘릴수 없도록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느 행정조직도 마음대로 정부예산을 가져다 쓰는 곳은 없다.

어느 정부조직이건 업무수행을 위해서는 사전에 예산계획을 세워
예산당국으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규제 만큼은 그렇지 않다.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부서는 규제의 도입과 수단선택에 있어
사실상 완전히 백지수표의 위임과 배타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더구나 환경보호나 산업안전 식품위생 물가안정 등 특정 분야의
정책목표를 달성해야만 하는 정책당국의 입장에서는 규제도입의
기대효과만이 크게 보일 뿐, 그 결과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나 부작용은
간과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정부규제들이 규제효과와 국민경제적 부담에
대한 면밀한 점검없이 졸속으로 도입되고, 규제만능의 행정풍토가
조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개혁 추진체계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건 국무총리가 취임초부터 규제혁파를 국정의 주요과제로 설정하고
규제개혁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된 규제개혁 추진체계의 정비방향은 사실상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무총리가 공동위원장이었던 민-관합동의 규제완화위원회는 1991년
정원식 국무총리 때에도 있었던 것이고, 그때에도 별 뾰족한 성과는 없었
던 것이다.

그동안 규제개혁 추진체계의 한계로 가장 많이 지적된 것이 민-관 합동의
한시적 자문위원회를 통한 규제완화 추진방식이었다.

필자도 일부 위원회에 참여한바 있지만, 민-관 합동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민간인사들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위촉한 파트타임 초빙위원에 불과한
것이다.

규제개혁업무가 그들에게는 부차적이거나 그저 사회봉사일 뿐인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위원회를 실무적으로 지원하는 공무원조직에 의해
규제개혁의 방향이 결정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바로 규제권자가
규제완화를 해서야 되겠느냐는 지적을 낳게된 원인인 것이다.

따라서 규제개혁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시도했던 방식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실효성있는 규제개혁 시스템이 갖추어야 하는 핵심적인 요건은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규제개혁 기능이 행정부기능의 일부로서 정부조직내에 항구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빙된 파트타임 민간위원들과 파견된 실무 공무원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에서 규제개혁을 담당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온대로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 규제개혁을 맡기겠다는 것 밖에 안되는 것이다.

규제개혁을 전담하고 이것을 하나의 경력으로 삼는 공무원조직이
정부내에 확고하게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행정조직은 속성상 정부규제의 도입과 강화를
통해 예산과 인력부족을 우회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정부규제에
대해서도 예산과 인사조직에 대한 것과 같이 범정부정인 조정과 통제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규제정책의 범정부적 일관성을 유지할수 있을 뿐 아니라,
규제행정의 범정부정 질적향상도 도모할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경험을 통해볼 때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규제영향
평가제를 도입하고, 이를 전문적으로 심사하는 항구적인 행정조직을
정부내에 설치하는 것이다.

한 분야의 업무는 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제일 잘알고 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정부의 한 부서가 다른 부서의 고유업무를 간섭한다면
행정책임과 정책일관성의 문제가 야기될수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미
정부내에서 예산과 인사 조직에 관해서 정부 타부처의 간섭과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는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예산은 예산실이, 인사조직은 총무처가, 법령심사는 법제처가 담당하고
있듯이 규제심사를 전담하는 행정조직이 정부내에 설치되어야만 전정한
의미의 규제혁파 시스템이 구축된다고 할수 있는 것이다.

규제개혁기본법이 조만간 입법될 예정이라고 한다.

실효성있는 규제개혁 시스템의 구축을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