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명예퇴직 등 감원바람에 조마조마한 남자의 변신은?

노문석(35)씨.

그는 지난 3월 마침내 미루고 미뤄왔던 변신을 결행했다.

여의도 넥타이부대를 명예제대(?)하고 LG마트 정육코너의 "칼잡이"로
변신한 것.

영업 현장의 최전선에서 새롭게 살길을 찾기보기 위해서다.

이제 전직이 됐지만 쓰다남은 명함에는 아직까지 "LG상사 총무부 과장
노문석"이란 글자가 또렷이 박혀있다.

그는 입사후 10여년간 총무부 언저리에서만 돌았다.

부서의 성격상 특별한 성취동기를 찾기 힘든데다 정년이 될때까지 회사
눈칫밥 먹을 일이 아득하기만 했다.

더구나 인사적체가 심한 회사조직에서 그의 단순한 경력이 승진에
유리할리 없다.

그가 변신을 결심했던 결정적인 동기다.

그러나 결단의 순간만 오면 망설여졌다.

어느새 나이도 30대 중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노씨는 회사내 해외무역팀과 유통팀을 놓고 한참을 저울질했다.

그러나 실무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무역팀에 끼여봤자 "찬밥"신세를
면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유통쪽에 승부수를 띄웠다.

그렇다고 미래 유망업종이니 유통우위 시대라는 식의 "유통천하론"에
눈 멀고 귀먼 것은 아니다.

과장이라는 "계급장"을 떼어버리고 몸으로 부딪쳐 보겠다는 배짱이
생겨서다.

"변신에 따른 득실을 따지고 있다가는 또 기회를 놓치겠더라구요.

솔직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였어요.

최소한 현장에서 쌓은 실무경험으로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는 LG마트 고양점에서 영업매니저 양성과정을 밟고 있다.

직위는 과장이지만 직책은 정육담당.

1층 정육코너의 판매보조직이다.

유통분야의 경험이 전무한 그로선 기한없는 OJT(신입사원훈련)과정을 다시
한번 거치는 셈이다.

과장이라는 직급에 연연하지 않는 만큼 청소 상품진열 등 개점준비에서부터
짐부리는 일까지 몸을 아끼지 않았다.

낯선 현장분위기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다.

그 덕에 이제는 점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감이 잡힌다.

정육코너의 일에도 이력이 붙었다.

처음에는 칼질이 서툴러 기름덩어리나 힘줄을 제거하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능란한 칼솜씨로 직접 손님을 맞을뿐 아니라 고기를
모양있게 썰어 상품진열대에 진열하기도 한다.

물론 의욕만 가지고 덤벼든 만큼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영업매니저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정자체가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직급이 과장이어선지 부담없이 접근해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챙겨 배워야 하는게 제일 힘들다고 말한다.

또 달라진 근무환경에 적응하는 일도 만만치가 않았다.

무엇보다 하루종일 서서 근무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얼마전에는 요통이 심해 침을 맞았다.

특히 주말을 완전 반납했기 때문에 가족과 주말을 함께 보내는 건
고사하고 친척 친구들 경조사조차 참석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는 요즘들어 퇴근하면 유통관련 서적을 뒤진다.

영업매니저일이 적당히 몸으로 때워 될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다.

그는 올하반기 정도쯤이면 영업매니저로서 자신의 몫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가 변신을 결행하면서 세운 1차목표였다.

그는 앞으로 영업외에 구매 관리쪽도 두루 익혀둘 계획이다.

LG상사가 2005년까지 대형할인점 LG마트 30여개를 개점한다는 장기비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차목표는?

이들 할인점중의 하나를 진두지휘할 점장이 되는 것이 꿈이다.

< 글 손성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