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이 지속되면서 경제자유의 실현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외침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이런 열기라면 이번에야말로 규제혁파가 추진되고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 국민도 번영을 구가하게 될 듯도 싶다.

우리가 홍콩이나 싱가포르 정도의 경제자유만 갖게 되면 10년 안에
일본인의 생활수준을 따라잡게 되리라는 주장도 있다.

경제자유가 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은 세계 각국의 경제자유도 비교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심지어는 종교도 자유시장에서 번창한다고 한다.

종교가 규제되고 특정 종교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사회보다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신자의 수가 증가하고 신앙심도 강해진다는 것이다.

종교에도 경쟁이 있을 때 목회자들이 시민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최근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규제완화나 작은 정부의 실현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오늘과 같은 규제의 정글이 왜 생겼고, 경쟁을 이전투구로 만드는 불공정
불투명한 경기규칙이 왜 유지되고 있는가를 따져보면 그 답은 분명해진다.

그것은 이 모든 규제의 불공정한 경기규칙을 바로 우리가 만들어 왔다는데
있다.

우리중의 누군가는 항상 제몫늘리기를 추구한다.

정치인은 말없고 무관심한 다수보다는 제몫늘리기에 나선 적극적인
이익집단을 환대한다.

그리고 그들의 표와 헌금을 기대할 것이다.

관료도 이익집단이긴 마찬가지다.

그들은 규제를 공급하고 규제 수요자로부터의 반대급부를 기대할 것이며
규제로 인해 강화된 권한은 규제 회피자로부터의 반대급부도 기대할 수 있게
해준다.

규제 수요자나 공급자의 자제를 호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모두가 이기적이고 그것은 또 우리의 유전자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경제자유를 찾으려면 결국은 우리들 자신이 이기심을 발동시켜야 하며
세단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규제혁파를 필생의 업적으로 남기고자 하는 한국의 마거릿 대처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를 또는 그녀를 정부지도자로 선출해야 한다.

다가오는 대선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미 경제 대통령론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어설픈 경제이론을 가지고 정부의 역할을 과신하는 인사여서는
안된다.

시장주의만을 신뢰하고 그것을 철의 여인처럼 밀어붙일 신념을 가져야
한다.

많은 정치인들은 공약을 실천하지 않는다.

바로 그 공약에 반대하는 규제 수요자들의 효과적인 로비 때문이다.

영국의 대처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더라도 유권자들이 그를 알아보게 하고
표를 몰아주도록 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과제다.

결국은 시민계몽이 필요한 부분이다.

둘째 가장 영향력있는 규제수요 집단이었던 재계가 이제는 규제로 인한
손실이 더 많음을 인식하고 규제혁파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재계가 이미 이런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듯한 움직임이 보이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재계전체의 이런 움직임과는 달리 개별 기업인들이 목전의 이익을
위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할 유혹을 뿌리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랜 기간 시장경제체체를 발전시켜온 미국에서도 개별기업과 정부에 의해
이 원칙이 무시되는 사례가 나타나곤 한다.

과거 크라이슬러가 파산에 직면했을 때 미국 정부는 주식옵션을 보증료로
받고 지급보증을 해줌으로써 이 회사의 회생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재계를 대표하고 크라이슬러 회장도 회원으로 있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취한 태도는 우리 재계가 본받을 만했다.

이 단체는 정부의 지급보증이 민간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을 초래하고
자유시장체제의 후퇴를 의미한다는 이유로 적극 반대했다.

정부의 보호속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지고 마는 미국 기업인들도 많다.

예컨대 포드자동차의 헨리 포드 2세는 지난 70년대에 홍수같이 밀려드는
일본차의 수입규제를 정부에 요청하려 했으나 회사의 수석 경제고문이 이를
반대하자 그를 해고해버렸다.

나중에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고문으로 발탁된 그의 반대이유는 물론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금융기관협의회나 부실채권 전담기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대두되는 것도 그것들이 정부주도에 의해 설립되면 결국 정부의
시장개입을 연장시키게 된다는 이유있는 우려 때문이다.

셋째 범람하는 규제에 의해 집단적으로 손실을 입고 있는 일반 시민들의
힘을 결집하는 것이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시민연대활동은 정치 경제계의 비리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불공정 경기규칙에 대한 인내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민운동은 최근에 발족한 "경제자유찾기모임"과 같이 경제활동의
전분야를 대상으로 할수도 있으며 예컨대 증권시장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주주 모임과 같이 특정 분야에서의 권리회복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시민운동의 어려움은 일반인들의 무임승차 동기로 인해 참여자의 수가
많지 않다는데 있다.

그러나 경제자유에 대한 시민의식의 향상과 함께 시민운동의 열기는
더해만 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