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로 더불어 사는 장인들 모임이 흙부치연구회다.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수 있는 삶은 얼마나 좋을까.

흙부치연구회 회원인 장인들의 삶은 흙과같이 순수하고 자연 그대로
살아숨쉬는 삶이다.

흙을 만지고 흙을 불태우고 흙에 혼을 불어넣는 그들은 오직 하나
흙으로만 모였다.

우리 조상의 자랑인 백자 분청자 옹기를 다시 세계의 한국 명품도자기로
만들어 그 자리를 되찾겠다는 일념이 장인들의 가슴속에 가득차 있다.

우리 모임은 주기적으로는 격월마다 장인들의 가마터에서 돌아가며
모이며 그때마다 회원들이 소중히 여기는 비법들을 발표하여 토론하곤
한다.

보통 오후2시께 모여 회합을 갖고 저녁에는 운치있는 정자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마시며 그간 지내온 손끝의 예술을 논하며 밤이 깊어가곤
한다.

전통가마에 불을 지피는 날이 되면 모이자는 전갈이 없어도 신에
홀려버린 사람처럼 모여들어 모두 막걸리를 들며 밤새도록 불을 지피는
동료장인을 격려하며 흙과 불과 혼이 가마속에서 창조되고 있는 모습에
젖어버린다.

활활타는 가마에서 나오는 열기가 주위를 밝혀주고 붉게 단 가마에
소나무장작을 손끝으로 돌려 불더미속에 던지고 있는 모습을 우리
장인들은 사랑한다.

불이 달아올라 푸른 빛이 발하는 온도에 이르면 흙덩이는 벌건 불덩이로
변하면서 겉에 채색된 안료는 무르익은 연홍시 색으로, 다시 촉촉이 젖은
대지의 검붉은 색과 가을하늘의 맑고 깊은 청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황홀경에 빠져들게 된다.

그림을 그리다 흙이 좋아 사기장이 됐다는 임항택, 분을 발라 예쁜
그릇을 만드는 안석희,선친의 유업을 이어받은 막내 김진현, 막사발의
후예 천한봉, 끝장을 꼭 보는 불독 최의석 박사, 고려인 후예 김세룡,
독짓는 늙은이 박정현 교수, 도자기외길 50년지기 박용필, 멋쟁이 강석영
교수, 댕기머리 이종능, 흙쟁이 오유근 도자기연구센터소장, 철화의
등대지기 황선량 등 20명이 흙부치모임을 이끌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