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망산위에 줄 이은 분묘들/만고 천년 낙양성을 마주 보고 있어라/
성중에선 낮이나 밤이나 노래와 종소리 일건만/이 산 위에서 들리느니
오직 송백에 스치는 바람소리뿐"

중국 당나라때의 문인인 심전기의 "망산"이라는 시다.

이 시에 나오는 북망산은 중국 하남성 낙양 북쪽에 있는 작은 산이다.

이곳에는 후한에서 당에 이르는 역대 왕후귀족과 명신들의 능묘가
있었다.

지금은 이곳이 논밭과 목장으로 변해 버렸으나 아직도 고분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이후 북망산은 무덤이 많은 곳,또는 사라밍 죽어서 가는 곳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641~660)도 660년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게
패망한 뒤 당나라로 끌려가 곧 병사하여 북망산에 묻혔다.

그때 대자효, 왕자 융, 대신 88명, 백성 1만2천8백여명도 함께
압송되었다.

그동안 실전된 의자왕묘가 북망산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될 단계에
와 있다는 소식이 관심을 끌게 한다.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하여 당나라로 끌려간 사비성이 있던
고장인 부여군이 지난해 10월 우호협력관계를 맺은 낙양시에 의뢰하여
북망산 일대를 항공탐사한 결과 의자왕묘의 로재 여부를 가름할수 있는
단서를 찾아 냈다.

유골이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은 5개의 묘를 확인했고 그 묘들 가운데는
지름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비슷한 12~13개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의자왕은 흔히 나라를 망친 제왕으로 기억될뿐이다.

그러나 그는 만년을 제외한다던 현군(현군)이었다.

태자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심이 극진하고 형제와의 우애가 돈독하여
"해동증자로 칭송되었다.

즉위뒤에는 귀족중심의 정치운영체제에 일대 개혁을 단합하여 왕권의
통제력을 강화했고 신라와의 전쟁에서는 항상 주도권을 쥐었다.

그러나 백제는 의자왕 완년의 사치와 방종, 귀족의 내부분열, 빈번한
전쟁으로 인한 국력의 피폐와 백성의 도탄, 일변도적인 친고구려정책 등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 멸망한다.

중국정부의 북망산 묘발굴 숭인이 떨어지게 되면 또 하나의 묻혀진
백제의 숨결이 드러나게 되리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