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배는 사실 어린 여자와 결혼을 하고 싶은 입장이었다.

이 여자 저 여자 사이를 날아다니는 동안 한 여자에게 정착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상식적인 노인으로 돌아올 적이 많았다.

"이봐요, 박미자양. 이 방에 잠깐 있어봐요. 내가 아주 좋은 선물을
하나 가지고 올게. 잠깐이면 돼요"

박동배는 제인에게 밍크코트를 선물하고 싶다.

죽은 마누라 옷장에 걸려서 비싼 이자를 물고 있는 코트가 임자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밍크코트가 천만원이 넘는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모른다.

다만 지금 그는 현금을 쓰지 않고 제인을 얻고 싶다.

아내라도 좋고 애인이라고 좋다.

천성이 야생늑대 같이 사나운 박동배 사장은 제인같이 착하고 순해
보이는 여자에게 본능적으로 끌린다.

그는 여자의 가치를 섹스의 상대로만 생각해왔는데 요새는 천성적인
마음의 부드러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더 깊이 인식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역시 무식한 여자아이들 보다는 유식하고, 유식한 것 보다는 교양이
있는 여자가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한마디로 그는 백점가까이 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난 것이다.

더구나 특이한 여자이다.

제인은, 아니 박미자는.

그는 숨이 차서 오른팔에 회색 빛깔의 고급인 밍크코트를 걸고
내려왔다.

"아니, 이게 뭐예요? 밍크코트 아니에요?"

"그래, 밍크야. 자네가 입고 싶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아, 나의 귀여운
여자"

그는 건성은 아니고 진정 떨리는 가슴으로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진정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자기가 원하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는 천사의 모습으로
그 밍크코트를 두르고 있다.

"오, 나의 천사. 나는 그대 없이는 못 살아요. 미자, 나의 여왕 미자"

갑자기 여왕처럼 되어 밍크코트를 두르고 있는 제인은 이것이 무슨
꿈인가 싶게 황홀하다.

"이걸 정말 저에게 주시는 거예요?"

"그럼, 미자는 나의 천사인걸"

순간 그녀는 박동배에게 안기면서 눈물이 글썽해진다.

"저, 저의 이름을, 진짜 이름을 가르쳐 드릴게요. 저는 제인이에요.
제인 김이에요. 박미자는 내가 이름을 가르쳐주고 싶지 않을때 쓰는
이름이구요. 그러니까 저를 이제부터 제인이라고 불러요"

그러면서 그녀는 그의 몸을 으스러지게 껴안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