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 관한 정책과 전략이 시민들에게 알려지는 일이 드문 터라,
참모총장에서 물러난 안병태 제독의 이임사는 관심을 끈다.

"김영삼 대통령이 95년과 96년의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대양해군을
지향하라고 했으므로, 대양해군의 건설은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일이며,
누구도 그것을 반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요지였다.

안 제독은 "독도분쟁"이 한창이던 때에 경항공모함 건조계획을 직접
김대통령에게 보고해서 결재받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씁쓸한 얘기다.

대양해군의 건설은 국방에서 중요한 일이며, 그것에 관해선 시민들의
지지는 그만두고라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도 없었다.

따라서 그것은 해사 졸업식에서 대통령의 축사로 발표될 일이 아니다.

김대통령이 경항공모함 건조문제를 다룬 방식도 그의 위험한 습관을 다시
보여준다.

그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합참이나 국방부와 협의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혼자 결정한 것은 우리의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그런 결정이 "독도분쟁"이 한창일 때 나왔고, 그가 민족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불리는 데 여러차례 이용해왔다는 사정까지 겹치면, 그 일엔
음산한 그늘이 드리운다.

게다가 해군참모총장이 지휘계통을 밟지 않고 자신과 직접 협의하도록
함으로써 김대통령은 결과적으로 "군간 알력(interservice rivalry)"을
부추겼다.

군간 알력은 어느 나라에서나 나오며, 영국 미국 그리고 2차대전 이전의
일본과 독일에서 보듯, 다스리기가 아주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그것이 잘 띄지 않았던 것은 육군의 압도적 우세때문에
잠복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부추긴 일은 본의였든 아니었든 걱정스럽다.

위기로 몰린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민망스럽지만, 위의 일들은 그냥
넘기기 어렵다.

경제에 무지한 대통령이 경제에 해를 입히는 데는 한도가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서슴없이 이용하는 정치지도자는
단숨에 나라를 망칠 수 있다.

세르비아의 민족주의를 부추긴 슬로보단 밀로세비치가 유고슬라비아를
망치는데 얼마나 걸렸는가.

월남전이라는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 미국은 국방에 관한 대통령의 행동을
통제하는 장치들을 잘 만들어놓았다.

어떤 나라와 싸워도 질 위험이 없는 미국이 그러한데, 전쟁의 위험이 가장
크다는 우리나라에선 정치인들과 정치학자들이 선거에 미칠 "북풍"을 얘기할
뿐 국방에 관한 대통령의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이 점에 대한 논의는 시급하다.

그러면 논의의 핵심인 대양해군의 타당성은 어떠한가.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대양해군은 오랫동안 차분히 논의해서 결정할
일이라는 점이다.

먼저 필요성의 문제가 있다.

우리 해군의 강화는 절실하다.

북한에 대비해서만이 아니라 세계 해운의 4분의1이 지나고 우리의 석유
보급로인 남중국해를 자신들의 실질적 내해로 만들려는 중국이 해군을
열심히 증강한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해로 둘러싸인 조그만 나라에서 대양해군은 과연 필요한가.

그리고 필요하다면, 점점 줄어드는 국방예산에 들어갈 만큼 우선순위에서
앞쪽에 서는가.

항공모함의 장래에 대한 물음도 있다.

항공모함의 전성기는 1942년 5월에 시작되어 1991년 1월에 끝났다.

2차대전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항공모함은 함대의 주력인 전함을 보조하는
것이 교리였다.

그러다가 미국 함대와 일본 함대 사이의 "산호해(Coral Sea)해전"에서
양쪽은 함재기들로만 싸웠고 본대들은 멀리 떨어져서 서로 보지도 못했다.

꼭 반세기 뒤 "걸프전쟁"에서 미국 항공모함들로부터 발진한 함재기들은
큰 몫을 했지만, 정작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이라크군을 아주 효과적으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공격한 크루즈 미사일이었다.

그런 사정은 당연히 모든 군대들로 하여금 새로운 교리를 개발하도록
만들었다.

전차에서 항공기를 거쳐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첨단무기 체계들에서
사람이 들어설 자리가 줄어드는 추세는 이미 오래 전에 나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이 타면, 무기체계는 값은 뛰고 성능은 떨어지는
사태가 나온 것이다.

그런 추세는 필연적으로 크루즈 미사일과 같은 무인 무기체계의 역할을
늘린다.

게다가 항공모함은 점점 "앉은 오리"가 되어가고 있다.

"포클랜드 전쟁"은 큰 배들이 종류를 가릴 것 없이, 값싼 미사일 공격에
약함을 보여주었다.

항공기의 성능이 나아지면서, 육상기지의 공군력이 항공모함의 필요성을
줄인다는 사정도 있다.

대양해군은 최면적 매력을 지녔다.

항공모함만큼 멋진 무기가 몇이나 되는가.

경상적 착륙이 "통제된 불시착"이라는 함재기를 몰고 조국을 지키는
것처럼 젊은이의 피를 뜨겁게 하는 일이 있을까.

그래서 사관학교를 갓 나온 장교에서부터 바닷바람 속에 늙은 제독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병들에게 "blue water navy"라는 말은 늘 무지개로 서고,
자연히 대양해군을 건설하자는 주장은 줄기차게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위에서 든 세가지 물음들에 답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정치 지도자들에게 만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세금을 낼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대통령의 서명이 든 계획도
그저 계획으로 머물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