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이목을 끄는 한보사건 청문회는 최소한 국민양심을 여과시켜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리는 기능만은 꼭 달성해야 한다.

2주여의 궤적은 한마디로 그런 기대에서 크게 빗나갔다.

그럴수록 내일로 박두한 김현철씨 청문회에 거는 기대는 팽배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김씨가 대통령인 부친의 나라를 위한 충정을 누구보다
가까이 체감하며, 그와의 천륜을 자랑으로 여기리란 점을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실로 대통령의 젊은 차남으로 이미 부친의 대통령 당선전부터 가족중에
유난히 각광을 받으며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한 사실
하나만으로 김씨의 "비범성"은 입증되고도 남았다.

그렇다면 임기 열달을 남겨두고 한보사건까지 터진 오늘의 좌표에서
김씨 자신이 어떻게 처신을 하는 것이 부친의 난경을 돕는 것이며 동시에
나라를 위한 것인지를 판단할 능력과 통찰력을 갖고 있으리라 믿는다.

바로 그런 점에서 김씨는 청문회 증인으로서 그에 대한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된다.

비록 혈기방장한 과거 수년 부지불식간 또는 주변의 오도로 말미암아
일부 월권적, 과잉적 처신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이제나마 하기 따라선
늦지 않다는 것이 일말의 기대다.

만일 결과적으로 잘못됐음을 진심 뉘우쳐 다수 국민이 지켜볼 청문회에서
진솔하게 머리숙여 사죄한다면 상황은 어쩌면 백팔십도로 달라질수 있는
것이 인심이다.

비록 동기가 순수했더라도 결과가 빗나갔다면 길게 미련을 두지 않고
깨끗이 자인하는 지고지순(지고지순)이야 말로 장래성있는, 더구나
민주화에 헌신한 육친의 훈도아래 남다른 성장기를 보낸 젊은이가 지닐수
있는 특별한 덕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김씨의 청문회에서의 행동이 자신뿐 아니라 부친의 역경, 나아가 국운을
구하는 극적 효과를 기대하지 말란 법이 없다.

다만 그것은 사람이 할 도리를 다한 연후에 찾아오는 천심이다.

실은 그같은 행운을 대통령일가 뿐아니라 국가적으로 처한 요즘의 시련이
애타게 고대함을 당사자들은 통촉하기 바란다.

이같은 김씨의 증언이 행해지는데 무엇이 긴요한가.

가족과 주변의 이심전심도 요긴하나 직접적인 것은 청문회장 분위기다.

만일 그동안처럼 여-야 위원들이 국민대표로서의 막중한 사명을 망각하고
당리당략에 매달려 경쟁적 망발을 계속한다면 이 나라 정치는 볼장 다 본다.

개중엔 언변은 부쳐도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려는 올곧은 태도도
돋보였다.

하지만 털끝만한 우월감에 상대방은 물론 좌중과 시청국민을 멸시하는
방자, 소속당 지도부만 의식한 단견, 진실규명 보다 발언기록에 매달리는
꼴불견 등이 자제돼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보-김현철파동을 하루 빨리 수습하는 것이 경제를 위해 너무도 절실하기
때문에, 김현철씨의 성실한 증언과 함께 책임있는 의정역량이 긴요하기만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