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세계금융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가 극단적 자유주의 추세를
보이고 있는 현대의 자본주의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한 월간지에 실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소로스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애틀랜틱 빈스리 2월호에 "자본가의 위협"
이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정부나 책임있는 기관들이 제 역할을 방기하면서
모든 것이 저절로 잘 될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꼬집었다.

"자유방임주의가 열린사회의 새로운 적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그의 논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 이익추구와 사회가치의 일치라는 19세기적 가정
은 현대사회의 복잡성속에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는데도 개인의 이익추구만을
최우선시하는 최근의 시장논리 때문에 공동체적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절대적 대안으로 떠오르는 영-미식 자본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인식할
것을 촉구한 셈이다.

이러한 소로스의 글이 관심을 끌었던 것은 탁월한 논리전개 때문은
아니었다.

영국의 이코너미스트지가 지적한대로 완전경쟁의 자유주의적 질서가
정착된 국제금융시장을 이용해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수혜자로서 그의
투기행위에 어울리지 않는 주당을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사실 자본주의 병폐의 일반론을 지적한 소로스의 주장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열린사회의 적으로까지 몰아부친 것은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최근들어 우리사회에서도 보다 자유로운 시장경제체제의 정착, 즉
자유주의 확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일 전경련은 산하기구로 "자유기업센터"를 발족시키고 현판식을
가졌다.

또 15일에는 각계에서 활동하는 이코너미스트들이 시민단체형태로
"경제자유찾기 모임"을 결성했다.

자유주의 이념의 홍보 계몽 교육사업 등을 통해 자유경쟁질서를 다듬어
나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사회는 자본주의 질서와 틀이 잡혔다고 보기는 어렵다.

계층별 지역별 분야별로 나뉘어진 패거리의식속에서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논리적 모순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그로인한 대립과 갈등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국민복지향상을 위한 사회정책의 강화에는 한목소리이지만 그 비용부담
(세금)에 대해서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정책금융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의 다른 한편에서는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나 금융의 지원이 대폭확대돼야 한다는 상반된 견해가 제시된다.

담보가 부족한 대출에 대해 은행원의 직무유기라고 몰아세우면서도
한편에서는 신용대출을 늘려야 경제가 회생된다는 논리가 버젓이 병존하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조직을 슬림화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해고는 곤란하다는 주장이 힘을 발휘하는 어정쩡한 모습은
제정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경제질서들이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지나친 평등주의는 자본주의체제의 작동자체를 해칠
우려가 있고 돈 많이 가진 사람, 기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거부감은
너무 강하게 형성돼 있어서 탈이다.

물론 부의 축적과정이 떳떳치 못하고 수단이 부정한 면이 많아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되지만 고쳐나가야 할 의식임에도 틀림없다.

흔히 우리나라는 제도의 실험장이라는 얘기들을 한다.

세계에서 좋다는 제도는 모두 받아들여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이 과거의
실상이었음도 부인할 수 없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그 큰 틀과 이념이 정립되지 못한
채 정부,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우왕좌왕해온 것이 한국경제의
현실이 아니었나 싶다.

정부의 규제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지엽적인 절차개선에 그치는
것은 이러한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뚜렷한 원칙과 방향설정없이 건수
위주로 진행된 탓이다.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인지 구분이 안되는 오늘의 경제질서는
하루빨리 추스릴 필요가 있다.

진유기업센터나 "경제자유찾기모임"의 출범에 의미를 두고자 하는 것도
이런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다만 이러한 논의의 과정에서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방임을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고 특히 생산자위주 대기업옹호의 논리개발에 치우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통화론적 자유주의를 주창한 미국의 프리드만 교수는 그의 저서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한 대법원 판사의 말을 인용해 "주먹을 뻗을 수 있는
나의 자유는 당신이 턱부근에서 제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시대상황변화에 부응하는 정부역할, 각 경제주체들이 지켜야할 게임의 룰,
일한 만큼 보상받는 상대적 평등, 정치와 경제의 조화로운 협력관계설정,
이런 것들이 우리가 시급히 재정립해야 될 과제들이다.

김영삼정부의 경제정책실패는 이러한 기본적인 철학과 전략의 빈곤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라도 한국토양에 맞는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의 틀을 재정립하고
발전전략을 가다듬는 것이 이시대를 이끌어가는 이코너미스트들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