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정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벤처기업 지원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80년대의 불황에서 미국 경제를 살려낸 일등공신이 벤처기업이었다는
점을 들어 우리경제 살리기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리스트럭처링이다 뭐다 해서 고용을 줄이고 있는 반면
벤처기업들은 새로운 고용창출과 혁신에 앞장서고 있다고 해서 칭찬이
대단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표현도 그 하나이다.

벤처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나 목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모험을 무릅쓰고 기업을 해보겠다는 풍토의 조성이 필요하다.

벤처기업은 말 그대로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은 모험산업이다.

미국의 경우 벤처기업이 창업하여 주식공개에 이르는 확률이 10%만
상회해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고 한다.

얼마전 검찰의 한 높은 분께서 "기업이 망하면 기업주도 반드시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물론 기업의 재산을 빼돌리고 부실기업으로 만든 악덕기업주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만 우리사회는 이미 선의의 기업주라 하더라도 기업이 망하면
개인의 재산도 내놓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감옥까지 가야한다는 것이
통념화되어 있다.

이러한 풍토에서 누가 선뜻 기업,그것도 위험이 큰 벤처기업을 하려고
하겠는가.

자본주의의 핵심은 주식회사제도이고 주식회사의 본질은 위험을 한정하기
위한 유한책임이다.

기업주라 하더라도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자기가 출자한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지면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벤처기업의 활성화는
구두선에 불과하다.

벤처기업에 대한 창업자금지원은 대출이 아닌 출자위주여야 한다.

벤처기업은 기술이나 아이디어만을 갖고 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투기적 지원이 절대적이다.

그래서 벤처기업에 출자하는 개인자본가를 천사(angel)라고 부른다.

미국의 경우 창업시 벤처주식의 가격이 2~3달러 정도로 자본주는 복권을
사는 기분으로 투자가 아닌 투기를 한다.

성공하면 큰 돈을 벌겠지만 실패할 경우 미련없이 출자금을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이른바 벤처캐피털회사조차 출자라는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

신기술 금융사들의 자금지원은 대부분이 대출형태이며 심지어 대출이
금지되어 있는 창투사들까지 약정출자라는 이름하에 확정금리를 받는
사실상의 대출을 하고 있는 회사가 적지않다.

벤처기업의 발굴못지 않게 이를 지속적으로 육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창업만 하고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비용만 부담할
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벤처기업의 창업까지는 개인자본주가, 창업후 주식을 공개할
때까지는 벤처캐피털이, 그리고 공개이후에는 투자은행이나 상업은행들이
이들을 지원하는 역할분담이 비교적 잘 되어 있다.

우리도 적어도 벤처기업이 공개된 이후부터는 금융기관들이 이들에게
대출을 지원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대출=담보"라는 등식이 관행화되어 있다.

기술하나로 창업한 벤처기업이 담보가 있을리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기술담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담보가 부족하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풍토에서 기술담보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얘기이다.

담보란 권리의 확보가 용이하고 담보물건을 처분할 수 있는 유통시장이
있어야 하며 처분시 대출금의 상환에 갈음할 수 있도록 청산가치가 높아야만
한다.

그러나 기술과 같은 무형의 지적재산권은 수명주기가 매우 짧은데다
그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기도 어렵고 특정기업이나 제품에 전유화되어
있기보다는 사람에 습득되어 있다.

따라서 기업이 망하면 그 경제적 가치는 크게 감소되는데다 권리의
확보조차 쉽지 않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법률적 보호도 쉽지 않으며 특히 우리의 경우
보호장치가 크게 미흡하다.

얼마전 중소기업 세미나에서 한 중소기업대표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다.

"중소기업이 일찍 망하고 싶거든 특허권 등록을 하시오.

등록을 하는 순간 모조품이나 복제품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이와같이 지적재산권 담보가 어렵기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지적재산권 자체를 담보로 하기보다는 신용평가시 이를 고려하는 정도로
활용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기술담보란 차입자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주는 정도에 불과한
사실상의 신용대출이다.

결론적으로 은행원이 선의의 주의와 관리의무를 다했다 하더라도 담보가
부족하다는 사실만으로 처벌받는다면 기술담보제도의 도입이나 벤처기업의
육성, 나아가서 우리 나라 금융의 선진화는 요원하다.

요즈음 공무원사회에서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언론으로 부터는 직무유기로
비난받고, 일을 하자니 사법당국으로 부터 직권남용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운 문자그대로 사면초가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복지부동이 안될 수가 없고 이런 와중에 수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신규대출은 꿈도 못꾸고 상환기간이 남아있는
대출까지도 언제 금융기관이 회수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한다.

사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생존하고 있는 우리의 중소기업은
참으로 대단하다.

몇년전 모 재벌총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의 정치는 4류이고, 관리는 3류이며, 기업은 2류란 말이 그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의 중소기업은 일류라는 말을 첨가했더라면 하는 이쉬움이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