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오행벌침연구협회 김동현 회장(35).

주위사람들은 그를 "벌침에 미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수석 졸업한 수재에다 잘 나가가던 증권사
펀드매니저가 갑자기 벌침에 미쳐 직장을 때려 치웠다.

밤낮으로 벌과 함께 살더니 3년만에 "오행지법"이라는 독창적인 벌침
이론을 들고 나왔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5백여명의 벌침시술사를 결집, 국내 최초로 전국
규모의 관련 단체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다.

중국과 필리핀 등 각국에 나가 벌침에 대한 강연과 세미나도 하고 직접
시술도 한다.

제자들도 몰려들고 있다.

수학을 마친 제자들이 구미 광주 전주등 전국 10여개 도시와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중국 등 4개국에도 진출, 오행벌침을 전도중이다.

그에기는 또 "벌통가방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겉칠이 벗겨지기 시작한 허름한 만원짜리 가방을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기 때문.

출퇴근길에도, 여행길에도, 대학원 등교길에도, 동창회 모임에도
벌통가방을 빠뜨리는 법이 없다.

가방속엔 하얀 플라스틱통과 필통만한 케이스가 달랑 들어 있다.

플라스틱케이스안엔 수백마리의 벌들이 붕붕붕 아우성치며 날아 다닌다.

케이스엔 간단한 침구가 들어있다.

이 가방을 들고 그는 시간만 나면 양로원, 무의탁노인 보호시설, 공사장,
장애자보호원 등을 찾아 무료시술을 한다.

그가 벌침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92년.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후 P증권사의 펀드매니저로 일하면서 한창
이름을 날리던 때다.

여러업체로 스카웃의 손길이 뻗치던 비싼 몸이었다.

이처럼 잘 나가던 그에게 두통과 허리통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좋다는 약과 병원은 다 찾아보았으나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다.

그러던 중 후배의 소개로 우연히 벌침을 맞게 됐다.

김회장은 "벌침을 맞자 거짓말같이 통증이 사라졌다"고 표현한다.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자".

한번 매료된 것에는 미친듯이 빠져드는 그의 성격이 진로를 바꾸게 했다.

벌침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당시 그는 직장내의 알력과 반목, 시기에 넌더리가 나 있었다고
한다.

미련없이 사표를 내던진 그는 중국과 뉴질랜드를 그가 벌침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밤에는 관련서적을 탐독하고 낮에는 직접 자신의 온몸에 벌침을
놓아가며 기초를 닦았다.

관련 자격증도 하나하나 취득했다.

중국연변의학원에서 국제침구의사자격증을 딴데 이어 카이로프랙틱
(척추교정)과 스포츠마사지자격증도 땃다.

당시 집안의 반대는 거의 필사적었다고.

문중에서는 "배울 만큼 배운놈이 벌가지고 장난하고 있다"며 나무랐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아내도 "수많은 직업중 왜 하필 벌침이냐"며
극구 만류했다.

부모님은 "뜬금없이 왜 직장을 그만두고 벌침이냐.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다"며 그의 길을 막았다.

그럴수록 그는 벌침에 더 빠져들었다.

김회장은 벌침 연구를 계속, "오행지법"이란 독특한 기법을 발표했다.

오행지법은 손과 발, 경락 (오장육부의 병이 몸거죽에 나타나는 자리)에
침을 놓는 전통적인 오행침법과 사상의학, 체질분석학을 종합적으로 구현한
침술.

기존 벌침법이 주먹구구식이었다면 그는 이를 이론적으로 체계화시켰을
뿐아니라 연구의 대상으로 공식화시켰다.

벌침은 근육통 손발저림 어깨결림 요통 디스크 좌골신경통과 혈액순환에
뛰어난 효능을 갖고 있다는게 정설.

김회장은 "벌침이 아직 믿지못할 민간요법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고
있다"며 "관련서적도 쓰고 국내외 지부도 계속 늘려 "오행지법"을
세계적인 민간요법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벌침으로 뒤바뀐 인생의
청사진을 펼쳤다.

< 글 박수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