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바둑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응창기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역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유창혁 9단.

"세계 제일의 공격수"답게 앞의 두 대회에서 "수비의 달인" 이창호 9단을
번번이 꺾었다.

특히 응창기배에서는 혈투끝에 반집을 이겨 끝내기의 명수 이9단의 코를
잡작하게 만들었다.

세계 최고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인 착각으로 결정적 고비
마다 라이벌 이9단에 분루를 삼켜야 했던 그가 요즘들어 강태공 이창호 9단
을 능가하는 집중력을 보이고 있는 비결은 뭘까.

2년전 모든 국내 타이틀을 잃고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는 단학수련
에 대해 알게 됐다.

매일 아침 시간을 내 단전에 기를 모으는 것 만으로 신기하게도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성적을 내게 됐고 세계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LG전자 홍보팀 오미라씨(26).

고등학교 때부터 시달려온 변비 때문에 피부도 곱지 않아 친구들간에
"꺼칠이"라는 놀림을 받곤 했다.

그의 얼굴이 요즘은 달덩이처럼 밝다.

퇴근후 단학수련으로 장을 단련, 변비를 완전히 퇴치한 까닭이다.

"아침마다 30분씩 수련을 하고나면 화장이 훨씬 잘 먹어요. 배의 군살도
없어지더군요".

단학바람이 불고 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줌마들 만이 아니다.

정신집중과 건강.미용에 좋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단학수련은 열풍처럼 번져가고 있다.

포스코 한국통신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을 비롯한 크고 작은 기업체들에서
앞다퉈 기 수련 지도자들을 초청해 직원들에 보급중이다.

한보철강 직원들은 단학수련을 통해 부도의 아픔을 이겨내고 있다.

과천정부종합청사 서울시청및 각구청 대법원 서울지법 국세청 경찰청 등
관공서 등에서도 바람이다.

영등포 문래동에 위치한 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 김우현과장은 "한달전
부터 회의실에서 직원의 3분의 1 정도가 점심시간을 이용해 단학수련을 하고
있다"며 "아직 본격적인 기 수련이 아닌 몸풀기 정도만 하고 있지만 벌써
장이 편하고 술마신 이튿날도 거뜬하다"고 신기해 했다.

대학가 동아리활동에서 단학수련이로 시작된 것은 이미 옛날 일이다.

서울대 이화여대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대학 단학 동아리들은 몰려드는
신입생들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다.

명지대 등 몇몇 대학에선 매주 2시간씩 의무적으로 수련을 해야 한다.

대학가 MT에서도 30분 정도의 기 수련은 필수코스로 정착됐다.

중고생들도 단학도장의 단골손님들이다.

스트레스해소와 정신집중에 좋다는 것이 학부모들 사이에 알려지면서부터다.

특히 주의가 산만해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의 부모들의 관심이 높다.

"책상앞에 5분도 앉아있지 못하던 아이가 도장에 며칠 다니더니 저녁시간에
차분히 앉아 이튿날 예습을 하더군요"

기수련법을 가르치는 단체는 단학선원 국선도 천통 등등 수십군데.

단학선원의 경우 전국에 1백50곳의 지부를 거느리고 있다.

대순진리회나 증산도 등 기수련을 가르치는 민족종교도 지난 1년새 교세를
2배 이상으로 확장했다.

그렇지만 기 수련을 만병통치약 정도로 여기는 것은 금물이다.

기수련을 자신의 내공상태에 맞춰 하지 않으면 소위 "주화입마"에 걸려
화가 되는 수도 있다.

또 기 수련을 통해 병을 낫게 해준다고 접근하는 이들은 십중팔구 사기꾼
이니 조심해야 한다.

기를 이용해 심신을 단련시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시켜 주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 김주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