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코메디언 가수 탤런트"라고 답하더라는 한 교사의 얘기를 최근에 들었다.

그 교사는 "불과 10년전만 하더라도 막연하나마 과학자라고 답한 학생이
꽤 많았는데 이제는 과학자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또 현재 과학자중 아들이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10명중 3명에
불과하다는 자료도 나왔다.

특히 딸인 경우는 과학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내용이다.

바로 얼마전 한국과학재단이 과학기술자 1천2백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과학기술인의 의식조사 결과에서다.

한마디로 과학기술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과학기술에 대한 이같은 푸대접은 반대로 과학기술인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조사에서 이승만정부로부터 현재의 김영삼 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역대 어느 정권이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달에 가장 많이 기여했는가"라는
질문에 "72%가 박정희정부"라고 응답했단다.

현재의 문민정부는 전두환정부(4.4%) 노태우정부(1.4%)보다는 많은
14.5%를 차지해 그나마 겨우 체면치레를 한 꼴이다.

그러나 더욱 형편없는 자료도 있다.

전국과학기술노조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의연구원 등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현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이들은 가차없이
낙제점인 "F학점"을 때렸다.

응답자 1천3백39명중 52.8%인 7백6명이 "F학점"을 33.5%인 4백49명이
"D학점"을 줬다.

현정부는 학업에 뜻이 없다는 것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결국 우리나라 정부는 전두환정권때부터 무려 18년여간 과학기술 발달에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경쟁국들이 21세기 선진국진입을 향해 10년 20년 목표로 뛰고 있을 때
우리는 걷는 것은 고사하고 수면제먹고 잠만 잔 꼴이었다.

정부부처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기업인들에게 21세기를 대비해 무엇을
해야하느냐 물으면 대부분이 무엇보다 먼저 과학기술을 진흥시켜야 한다고
들려준다.

이들은 "과학기술을 살려야 경제가 산다"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선진국진입과 장미빛 미래가 보장된다"는 말을 잘도 늘어
놓는다.

또 어떤이는 "우리가 자원이 있나 머리밖에 없으니 당연히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지" "과학기술쪽에 무한정 투자해야 돼"라고 흥분하는 사람도
많다.

한술 더떠 한동안 지는 태양으로 치부되던 영국이 다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유중의 하나가 대대적인 과학기술진흥 정책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경제전쟁과 치열한 세계경쟁시대에서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진흥이
필요하다는 총론에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도 각론에 들어가면 얘기가 확 달라진다.

과학기술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쪽이 더 급하다는 것이다.

쓰러져가는 은행을 지원해야 하고 경쟁력도 자구노력도 없는 부도일보
직전의 기업까지 살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또 선거철만 되면 다리를 놓아주겠다 신도시를 건설하겠다 등등의 예산
빼가기 경쟁도 치열하다.

이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으니 차떼고 포떼고 나니 과학기술쪽에 투자할
돈이 있을리 없다.

모두가 언제 과학기술진흥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말했느냐식의 오리발이다.

지난 2월 우여곡절끝에 국회를 통과한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을 봐도
마찬가지다.

법에서는 당초 2002년까지 정부연구개발투자를 총예산의 5%로 확대한다는
명시조항을 넣기로 했으나 끝내 좌절됐다.

과학기술진흥이라는 원론에는 찬성하지만 이를위해 총대를 맬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우리경제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나 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서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획기적인 과학기술진흥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나가야
할 시점이다.

"21세기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드골 대통령이 과학기술진흥에 프랑스의 모든 것을 걸었듯이 우리도 다음
대선때는 과학기술진흥을 최대선거공약으로 내거는 사람을 뽑기라도
해야겠다"는 한 과학자의 얘기가 과학의 날(21일)을 앞두고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