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가 부실 시공되고 있다는 미국 WJE사의 안전진단결과는 무척
충격적이다.

공사초기부터 부실문제가 거론돼오긴 했으나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하는
교통대동맥 공사에서 이같이 허술한 구석이 많이 발견됐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세계적 안전진단 전문업체인 WJE사가 지난 6개월동안 서울~천안간
1개공구와 천안~대전간 시험선 61km의 전구간을 대상으로 진단한 결과
점검대상 1천12곳중 70.6%인 7백15군데에서 하자가 발견됐고 21.3%가
재시공이나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교량구조물 39곳이 구조 안전상 결함으로 재시공해야 한다는
판정은 부실시공이 무척 심각함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뒤늦게나마 보완할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로 인한 비용증가와 국민불안을
생각하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더구나 지적된 결함내용과 원인을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든다.

어떤 구간은 설계도면도 없이 감리계획도 세우지 않고 공사부터
시작했다니 무모하다는 표현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지난 9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착공을 서두른 졸속행정이나 감독소홀의
일차적 책임은 누가뭐래도 당국에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부실시공의 이유가 설명될 수는 없다.

업계의 완벽시공에 대한 준비부족이나 기술수준의 낙후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설계부터가 잘못된 것도 있고 구조물의 정밀시공이 이뤄지지 못한 것
등은 기술부족에도 원인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대부분이 건설의 기초적인
사항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컨대콘크리트 품질이 떨어진다든가, 공사장의 이물질이 구조물사이에
끼어있다든가 하는 극히 초보적인 잘못들이 많았다는 것은 우리업계가
부끄럽게 여겨야 할 일이다.

고질병과도 같은 "대충대충"시공이 여전한 것은 큰문제다.

업계나 고속철도공단관계자들은 경미한 사항이 너무 부풀려졌다고
항변하는 모양이다.

1백년 이상을 버텨야 하는 고속철도공사에서 사소한 실수나 잘못도
용납될수 없다는 것은 시공업체스스로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준비소홀이 누구의 책임이든, 안전에 큰 문제가 되든 안되든 원칙대로
철저한 시공이 이뤄지지 못한 것은 시공업체들의 잘못이다.

철도공단책임자는 잘못된 부분에 대한 재시공이나 보수공사를 해가면서
공기를 맞추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공사가 지연되면 그만큼 추가 비용이 많이 들고 국민적 손실도
커진다.

그러나 공기를 맞추는 것보다는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우선돼야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벌써부터 "이래가지고야 완공되더라도 불안해서 어떻게 타겠느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를 불식시키는 길은 여러 말이 필요없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철저한 재점검을 통해 두번다시 이런 부실시공
문제가 거론되지 않도록 하는 원칙시공만이 유일한 대책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