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이 침실과 사무실이 있는 7층에서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는데
5분도 안 걸렸다.

놓칠세라 마음이 급하다.

먹이를 본 매의 눈이다.

"저 아가씨 맞지?"

"네"

"아까부터 어지럽다고 저러고 있어요"

웨이터가 작게 속삭인다.

그러자 박동배 사장은 동정어린 말투로 제인에게 다가간다.

"아가씨, 어디가 아파요?"

섬세한 손으로 머리를 짚은채 제인이 그를 올려다 본다.

몹시 미안한 기색이다.

큰 눈동자가 시원하게 생겼다.

맑은 시선이 박사장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는 여자의 눈매를 중요시 하는 오입쟁이다.

"아가씨, 나는 이 호텔의 사장인데, 어디 아프면 병원에라도 데려다줄까?
나가서 내 차에 탈래요?"

그는 자기의 재규어자동차를 은근히 자랑하고 싶다.

새로 뽑은 것으로 한국에는 몇대 안 되는 고급차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 돌아가야 돼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녀의 한국말은 생경하고 재미있다.

영감님은 바짝 호기심이 동한다.

"갑자기 어디가 그리 아픈거요? 얼굴이 아주 핼쓱한데"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요. 그냥 현기증이 와서요. 미안합니다" 제

인은 엉거주춤 일어선다.

그리고 애교있는 얼굴로 박동배 사장에게 은근히 유혹하는 시선을 보낸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돈이다.

입원비를 조금이라도 더 만들고 싶다.

그녀는 자기의 입원비로 자기네 작은 아파트 한채가 날아간 것을 잘
알고 있다.

천사같은 어머니. 어머니와의 약속을 꼭 지킬거예요.

그녀는 슬픈 얼굴로 그들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내 스위트룸으로 가서 조금 쉬고 가요. 급하면 의사라도 불러줄게"

그는 자기의 매력이 돈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마음에 드는 젊은 아가씨를 낚아챌 무기가 그것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절절하게 겪어왔다.

"이군, 이 아가씨를 내가 손님접대용으로 쓰는 스위트룸으로 안내해줘"

그의 스위트룸은 7층에 있었다.

가끔 아가씨들을 데리고 연애를 하는 방이기도 하다.

전망이 좋고 아주 화려한 방이다.

현금관리 때문에 그는 아예 호텔에서 살고 있다.

"아니에요, 저는 곧 돌아가기로 어머니와 약속했어요"

제인은 웨이터의 충고대로 몸을 팔더라도 좀 버팅기면서 게임을 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사실 그녀는 지금 버티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워서 겨우 일어서
있는 지경이다.

먹은 것도 없는데다 초이와의 러브메이킹이 그녀를 녹초로 만들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