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자정께 능곡 중앙병원 앞.

음주단속을 펴던 고양경찰서 교통과 석명주(30)순경은 낯익은 운전자
한사람을 적발했다.

지난해 말 자신이 직접 음주스티커를 끊었던 바로 그사람이었다.

면허취소상태에서 또다시 무면허로 음주운전을 하다가 단속된 것.

서울 강남에 있는 직장을 다니면서 어쩔수 없이 한잔 마시고 술이 깼다고
생각해 일산의 아파트로 귀가하던 그 사람의 형편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석순경은 냉정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불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석순경은 일산주민들이 불편한 교통문제로 겪는 어려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운전자 본인과 그 가족,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절대로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경찰이 단속에 나서고는 있지만 술취한 자동차가 일산의 밤길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일산지역 음주운전 사고비율이 전체 교통사고의
무려 13.3%로 전국 평균치(6.2%)의 두배를 훨씬 웃돌고 있다.

한달 4백50건 정도의 교통사고 중에서 음주운전에 의한 것이 60여건에
이른다.

경찰은 매일밤 일산지역 음주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하루 10여건, 한달
3백여건의 단속실적은 떨어질줄 모른다.

이같은 행태는 일산이 "베드타운"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민 대부분이 서울에 직장을 갖고 있지만 연계 대중교통수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강남이나 강동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할증이 아니더라도 최소 2만원이다.

그나마 택시가 없어 모범택시를 타려면 5만원은 내야 한다.

한마디로 택시기사들의 "봉"인 셈이다.

모범택시 기사들 사이에 "낮엔 공항 밤엔 일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음주운전은 직장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주부들도 대부분 서울에서 쇼핑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기 때문.

시내에서 동창모임이라도 있는 날은 "눈 질끈 감고" 차를 몰고 온다.

고양경찰서 양재일(34)경장은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운전자들의 의식
수준이 문제"라면서 "정부에서도 심야버스운행이나 서울시내및 강남 강동
지역과의 버스노선연계 등으로 음주운전을 하지 않도록 유도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 김주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