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신도시에 갇힌 학생들은 주말에 서울로 탈출(?)을 감행한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서울 신촌행 시외버스 경유지인 일산 대화역이
중.고생들로 붐비는 색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먹거리와 위락시설, 다양한 문화공간을 접할 수 있고 사람구경까지 하는
신촌에서 주말을 만끽하기 위해 청소년들은 일산을 뒤로 한다.

이같은 일산엑소더스는 또래의 청소년들이 향유하고픈 각종 문화공간과
분출하는 젊음을 한데 모아 발산할 장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즐길 시설이 마땅치 않아 답답해요"

일산신도시 후곡마을에 살고 있는 주엽고 1학년 심원호군.

서울 상계동에 살다 지난 95년 일산으로 이사했다.

심군은 이곳에 산지 2년이 넘었지만 일산생활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교울타리를 벗어나서 도대체 가볼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토요일인 지난 12일 방과후.

심군은 집에 오자마자 먼지 낀 자전거를 만져봤다.

하지만 생각뿐이다.

보도와 분리되지 않은 형식적인 자전거도로에다 횡단보도에서 차들이
가로막는 통에 제대로 달릴 수가 없다.

그렇다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로 뛰어들수 없는 노릇이다.

일산구청이 자전거천국을 만들겠다는 구호를 걸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될까 의문이 앞선다.

화창한 봄날 어디든지 찾아가 실컷 뛰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친다.

그러나 그 흔하디 흔한 "길거리농구" 한번 제대로 즐길 공간도 마땅치 않다.

결국 방안에서 텔레비전과 씨름하다 오후를 마감했다.

휴일인 일요일.

습관대로 일찍 눈을 떴다.

전화연락을 통해 친구를 만나려해도 갈곳이 없다.

공부를 할까해도 쉽게 찾을 공립도서관이 없다.

고양에 소규모 도서관이 두군데 있지만 거리도 멀고 자리확보도 자신없다.

운동을 하고 싶어도 공공체육시설이라곤 아파트내 테니스장 뿐으로 이마저
어른들 중심의 회원제로 운영돼 학생신분으로서는 기웃거릴 수 없는 형편
이다.

공연장은 주엽동 쇼핑센터에 아트홀이 한군데 있지만 활발한 라이브공연을
원하는 심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할수없이 친구들과 길거리데이트를 하기로 작정했다.

길거리를 오가며 잡담을 하다 간식을 사먹는 것이 전부다.

심군의 단조로운 주말은 일산의 대부분 학생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경험들이다.

이처럼 시설이 태부족한 환경탓에 일산의 청소년들은 공부에 대한 중압감을
풀어줄 위락시설과 문화공간이 부족한데 대해 너나없이 큰 불만을 갖고 있다.

"잔뜩 아파트를 짓고 넓은 도로만 내면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가 한심해요. 이런 신도시는 나도 지을 수 있을것 같아요"

심군의 볼멘소리를 일산 청소년들만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결국 일산에 사는 모든 주민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김희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