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요, 지금 돌아가야 돼요. 그리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안심시켜
드려야 해요"

웨이터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양질의 처녀가 남자들과 러브호텔에
드나들까 아리송해진다.

"아가씨, 전화 빌려드려요?"

"네"

그녀는 거절한다든가 의심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자기방어는 전혀 안하는
묘한 데가 있다.

여기서 전화를 하면 자기의 신분이 드러날텐데 아무 겁도 없다.

제인은 어정어정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걸음걸이가 갑자기 할머니같다.

의혹이 반짝이는 시선으로 웨이터는 제인의 어리덕거리는 행동을 눈여겨
본다.

그러면서 웨이터는 갑자기 이 여자가 혹시 대마초를 피우는 지극히 위험한
여자가 아닌가 의심해본다.

"엄마, 나야.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곧 들어갈게요. 마마, 돈워리,
나 여기 집근처에 있어요. 우리 메어리도 잘 자지요? 지금 나 현기증이 나서
쉬고 있어요. 그 남자요? 나의 오래된 보이프렌드야. 걱정 마. 약속은 잘
지키고 있으니까. 내일은 엄마와 약속 콕 지킬거야. 돈워리, 바이 마마.
자요 자. 바아이"

제인은 가끔 꼭이라는 발음을 콕이라고 해서 외국인의 한국말같이 들리게
한다.

사실 그 녀석도 지금 콕이라고 해서 이 여자가 미국간다는 말도 진짜라고
믿게 됐다.

"여기 전화비를 드려요?" 그녀는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낸다.

"아닙니다. 집어넣으시고. 그럼 미국에서 오시면 연락드리게 번호를
주십시오"

그녀의 예의바르고 교양 넘치는 매너때문에 웨이터 녀석은 저런 여자면
늙은 사장보다는 자기에게 더 사랑을 받는 신분이 되어야 한다고 8백50만원을
가슴에 가득 담고 배짱좋게 기분을 떠본다.

"저에게 무슨 용건이 또 남았어요?" 그녀는 정중하게 묻는다.

그 모습이 꼭 냉정하고 부드러운 미국 대통령부인을 닮았다.

"저, 아가씨는 미국 대통령부인 힐러리를 닮았습니다. 저는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학생인데요. 삐삐를 가르쳐주고 가시면 사장님보다
제가 데이트신청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힐러리라는 말에 제인은 크게 웃는다.

"웃기지 말아요. 누구를 놀리시는 건가요? 그러고 보니 당신은 콕
손창민이 닮았네요. 하하하하하"

그들은 기분좋게 서로 띄워주면서 웃는다.

"나는 오늘밤밖에 시간이 없어요. 아시겠어요? 내일은 떠나요. 요기를
떠나요. 이 거리를 떠나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