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20~30년대엔 일제의 수탈로 황폐된 농촌에서 돈에 팔려
비극적 일생을 마친 처녀를 묘사한 소설들이 많다.

자연주의 작품으론 김동인의 "감자"를 들수 있고 신경향파로선 이기영의
"민촌"을 꼽을 수 있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자란 복녀는 열다섯 살때 동네 홀아비에게
80원에 팔려서 시집간다.

그러나 남편은 무능하고 게을러서 평양 칠성문 밖 빈민굴로 들어가게
된다.

복녀는 처음엔 인부 감독에게 정조를 유린당하지만 나중엔 중국인
왕서방에게 몸을 맡긴다.

결국 그녀는 왕서방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고 남편은 돈 몇푼에 왕서방의
살인을 묵인한다는 게 "감자"의 큰 줄거리이다.

또 이기영의 "민촌"의 내용은 양식이 떨어진 점순이의 아버지 김첨지가
지주 박주사 아들한테 장릿벼 한 섬을 얻는다.

이게 발단이 돼 벼 두섬이 점순이 부친을 미치게 만들고 점순이 가슴에
못을 박으며 모친과 오빠를 비탄에 빠지게 한다는 비극으로 끝난다.

이기영의 호 민촌이 이 작품에서 유래할만큼 대표작의 하나지만
아이로니칼한 일은 그가 고발했던 비참한 상황이 지금 그가 참여했던
북한정권하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 여성들이 식량난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국 남자들에게 한 사람
1만위안 (한국돈 1백10여만원)에 팔려나가고 있다 한다.

특히 북한 탈북자들이 몰려드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밀매되는데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여성이라 한다.

처녀라야 상품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팔려간 북한처녀들은 사간 사람들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북쪽
사람들에게 신고돼서 다시 북한으로 끌려갈 위험이 있으므로 마치
노예처럼 혹사당하고있다 한다.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으로 주민들의 굶주림과 죽음, 탈북사태가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보도된바 있다.

지난 7일엔 북한 보건부 관리가 유엔아동기호기금 대표단에게 영양실조로
죽은 어린이가 1백34명에 달한다고 밝혔다는 것만으로도 그 참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꽃다운 처녀들마저 중국으로 팔려나간다는 소식은 우리
가슴을 한층 저미게 한다.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말이 있듯이 북한정권은 식량난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존속할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할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