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부터 국회 한보청문회가 시작됐다.

나라가 온통 흔들릴 정도의 비리사건이 터졌는데도 무엇하나 속시원하게
진상이 밝혀지지도 않고 또 책임질 사람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청문회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 건 당연하다.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는 바가 청문회에서 얼마나 밝혀질수 있을
것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청문회의 결과는 난국수습을 위한 국민통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청문회 첫날 한보비리의혹의 핵심인 정태수씨는 증언대에서 "모른다"
"기억이 나기 않는다" "재판중이라서 말할수 없다"는 식의 답변을 거듭했다.

이런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은 분통을 터뜨리고 청문회의 한계를 미리
짐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선 여야의원들은 역사를 바르게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88년 5공청문회에서처럼 정치공방에 그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정치권이 공멸한 것을 우려해서 청문회를 적당히 운영, 정치적 담합을
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시각도 일부국민들은 갖고있다.

이와같은 국민의 불신이 왜 생겼는가를 여야 정치인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회청문회가 밝힐 일은 세가지다.

첫째 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금액의 대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하는
점이고 둘째 정태수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들이 누구이며 세째 김현철씨의
한보관련의혹과 국정개입실상을 밝혀내는 일이다.

우선 천문학적인 금액의 특혜대출을 가능케한 외압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정상적으로는 그러한 대출이 이루어질수 없다는건 상식인데도 도대체
책임질 사람이 없다.

한보철강이 국가기간산업이라서 또는 장래성이 있어서 대출을 했다고
떳떳이 나서는 사람이 없다면 외압이 있었다는걸 만천하에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음으로 외압실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소위
정태수 리스트의 내용을 밝혀야 한다.

청문회 첫날 정태수씨는 일부 국회의원에게 돈을 주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러나 관련 의원들은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국민들은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어지럽기만 하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돈에 관한 모든걸 밝혀내지 못할것이라고
믿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정치자금에 관한한 자유로울수가 없기때문이다.

그러나 정태수 리스트 내용이 철저히 파헤쳐지지 않으면 국민의 분노와
정치불신은 걷잡을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현철씨의 한보관련 의혹과 국정개입실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그야말로 정치권은 공멸한다.

적당히 변죽만 울리고 국민에게 공개할 내용이 없다면 그뒤에 어떤
사태가 올것인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다.

증인을 윽박지르고, 증인의 입만 열기를 기다리는 청문회여서는 안된다.

청문회는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쇼를 연출하고 흥분해서 증인에게 호통치는
무대가 아니다.

진실을 차분하게 밝혀내려면 철저한 증거와 빈틈없는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