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가 심어서 지가 비묵을라카믄 나무 몬심어".

"자기가 심어서 자기가 베려면 나무를 못심는다"는 경상도 사투리다.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에 사는 제2대 "산머슴" 신용운(30)씨.

그는 일상이 힘들거나 조급함이 들 때면 이 말을 떠올린다.

지난 87년 거창농고를 졸업하고 대를 잇겠다고 했을때 아버지 신덕범(68)
옹이 일러준 말이다.

쑥쑥자라는 나무보다도 오히려 그의 젊은 혈기를 다스려주는 금과옥조.

드넓은 산에 나무 몇그루 심어서는 표도 안나고 돈이 될리가 없다.

산림은 말 그대로 3대의 땀과 인내가 요구되는 사업.

아버지가 조림하고 아들이 육림하면 손자대에나 벌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씨가 이 일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은 평생을 조림에 바친 아버지에
반해서다.

3남3녀중 막내인 신씨는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산과 나무를 좋아하고 목돈생기면 산부터 살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헐벗은 산에 나무심고 가슴벅차했던 아버지와는 다르다.

그에게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도 하나의 사업.

헐벗은 산만 보면 내산 남의산 가리지 않았던 아버지에게 조림은
사업이라기 보다는 애국이자 후손을 위한 희생이었다.

"빚져서 산사고 나무 심느라 또 빚지고."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한때 1백만평에 달했던 자식같은 산을 팔아야 했다.

이제 남아있는 40만평의 산을 지키는 일은 자신의 몫이 됐다.

아버지가 심은 나무를 키워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는 지난 89년 임업후계자로 선정됐다.

임업후계자 육성자금으로 거창군 가복면에 자신의 명의로 23정보(약
7만평)의 산을 사들였다.

그러나 허울좋은 정부지원만으로 아버지의 전철을 피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가 심어논 나무만을 키워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돈도 벌어야 했다.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젊은 놈이 헛일 한다"는 세상의 비웃음을 날려버리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몇년전부터 아버지의 유일한 재원이었던 제재소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 임업후계자와 연계해 싼 목재를 공급받는 등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상유지가 고작이다.

수입재가 판치고 있는데다 인건비부담도 늘어나기만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경제수에 승부를 걸고 있다.

10년 안팎이면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관상수 자작나무 고르쇠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나무들이 요즘 소득으로 이어져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관상수 수요는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

자작나무 고르쇠에서 뽑아낸 물이 건강수로 인기를 끌면서 한말에 4~5만원
대에 팔려 나가고 있다.

동물사육으로도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산 외곽에 사육장을 짓고 사슴 멧돼지 염소 등을 키우고 있다.

사슴만도 50여마리에 달한다.

그렇더라도 본업은 역시 산림산업.

그는 나무를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개발하는 게 꿈이다.

기껏 목재로나 이용되는 나무의 쓰임새를 다양하게 개발하는 것.

그는 몇년전 임업후계자들과 일본에 연수갔다가 이같은 목표를 잡았다.

그는 일본에서 "나무 한그루가 심어졌을 때부터 특정한 용도를 위해
개발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그러나 산림산업가로서의 꿈을 실현하기까지에는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국산을 외면하는 소비행태가 무엇보다 큰 걸림돌이다.

한창 개발중인 자연휴양림이나 통나무집 등의 목재조차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산이 좋다고 나무 심그러 다니면 미쳤다 캅니다.

그러나 재제소일 등으로 골아프다가도 산에 올라가 나무 크는 것 보면
고마 고민이 싹 가십니더"

신씨도 어느새 아버지 못지 않은 진짜 "산머슴"이 돼 버린 것이다.

< 글 손성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