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 < 임업연구원 산림미생물과 토양학 박사 >

TV를 통해 어떤 사람이 굉장히 큰 나무의 아래 부분에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나무를 자르지 못하게 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길을 내기 위하여 나이가 2백년이 훨씬 넘은 듯한 이 나무를 자르려는
것을 이 동네 주민이 막으려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미국 유학시절이던 90년대 초반 TV를 통해 종종 접할 수
있었고, 그 장면은 지금도 내 기억속에 생생하게 살아남아 나의 직업, 나의
삶에 반영되고 있다.

최근 식수나 대기의 오염문제가 심각해짐에 따라 우리나라 국민들도 환경
보호에 대한 의식이 매우 높아졌다.

이러한 시점에서 산림환경을 관리하는 임업분야를 연구.발전시키고
국민들의 환경이나 삶의 공간에 대한 의식수준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이 기쁘다.

특히 산림이나 환경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쳐 줄
때는 전도자와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미국 유학시절, 나의 박사논문 주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슈피리어
호수 주변에 위치한 사시나무 숲의 토양환경 변화를 조사하고 고찰하는
것이었다.

나는 매달 1~2회 학교에서 제공하는 트럭을 몰고 집사람과 함께 연구
대상지로 조사를 다녔는데, 연구를 위해 머물면서 캠핑을 하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하다.

다른 사람에 비하여 약간 짧은(4년이 채 못되는) 기간만에 박사학위를
따고 귀국했을 때는 주변에서 놀러만 다니던 "나무꾼"이 너무 빨리 학위를
받았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귀국후에도 생물다양성 조사를 위해 울릉도 등 전국의 산야를 훑고 다녔다.

나의 직장생활이 이처럼 아름다움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연구직이지만 공무원이기에 상급자들이 요구하는 각종 행정이나 형식적인
틀 속에서 생각의 자유를 찾아 버둥거리기도 한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 비해 너무도 박한 "공무원 월급"에
작은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정보산업보다 더 유익한 미래산업의 역군임을 자부할 수 있다.

연구결과를 대학강단에서 후배들에게 강의할 수 있는 기회도 누릴 수 있다.

임업연구사는 호연지기의 기상으로 머나먼 미래를 향해, 인류의 행복을
위해 연구하는 순수함이 가득한 직업이다.

공무원이지만 부정이나 비리와 거리가 멀다.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인류 후손의 삶이 아름답게 영위될 수 있도록
연구하는 신선같은 직업이다.

나무나 흙의 문제를 상의하러 오는 많은 사람들이 내 연구실이 있는 홍릉
수목원을 방문할 때마다 던지는 말이 있다.

"참 좋은 곳에서 근무하시는군요"

이 질문에 나는 늘 웃으면서 답한다.

"당신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라고.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