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보전".

국토개발을 하자니 자연이 훼손되고 환경을 지키자니 개발이 어렵고...

경제성장과 더불어 우리앞에 다가온 숙명적인 과제.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던 개발독재시대의 자연
파괴.

그러나 개발을 위한 더이상의 환경파괴를 방치해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드세지고 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환경보전과 국토개발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경제신문사 영파일팀은 환경운동연합의 생태조사팀장인 맹지연씨(25)와
현대건설 안전환경관리부 환경팀의 곽승현씨(28)를 초청, 의견을 들어봤다.

<> 맹지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환경은 사실 우리의 후손들로부터
잠시 빌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언젠가 그들에게 다시 돌려줘야 할 소중한 자연환경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파괴할 수는 없겠죠.

우리가 살아가야 할 터전인 이 땅이 삶을 위협할 정도로 악화되어가는
상황에서 개발을 통한 경제적 부의 창출이 과연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 곽승현 =개발이나 보존 어느쪽이든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인간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다만 개발에 따르는 환경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을 통해 환경보존과 개발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하겠죠.

또 최근들어 "환경친화적 제품"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듯이 기업들도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시대가 됐어요.

국제무역에서도 환경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고요.

<> 맹지연 =해안가 매립이나 각종 시설물이 들어설 때 그것이 국가적 또는
지역적으로 불가피한 사안인 경우까지 저희가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단지 문제는 그러한 계획 자체가 주변 환경을 무시해가면서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거죠.

때로는 정책 입안단계부터 잘못된 경우도 있어요.

예를 들어 쓰레기 매립장에 대한 오염지수 기준치가 공학적인 연구나
주변환경에 대한 정밀한 조사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지는 경우도 있어요.

환경론자들이 무조건 반대만 하는 사람들은 결코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해요.

<> 곽승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들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어요.

오염물질 처리에 필요한 기술이나 비용에 대한 충분한 지식없이 단순한
논리나 막연한 이상에 근거한 목표치를 요구하는 관계자들도 있죠.

이 경우 환경보존도 좋지만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낭비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예요.

좀더 탄력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으면 해요.

<> 맹지연 =경제적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가치를 우선할
것인가를 놓고 볼 때 후자를 중시하는 것이 환경론자들의 기본 입장이에요.

장기적인 안목과 일관되고 타당한 정책없이 무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개발은 개발이 아니죠.

흔히 말하는 "지속가능"이라는 용어도 "지탱가능"으로 고쳐야 해요.

그리고 인간의 욕심이 세상을 지배하는 한 "지탱가능한 개발"이란 아마
실현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으로 말해 개발하다 함께 죽는거죠.

우리 국토의 약 65%를 차지하는 산을 "개발의 유보지"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은 것이 현실이라면 환경보존은 요원한 일이겠죠.

우리의 자연은 우리 자신도 아직 모를 정도로 많은 가치를 가진 것이에요.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빨리 바꿔야 해요.

<> 곽승현 =환경 보존에 관한 국민들의 이중적 태도 또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오염을 피부로 느끼면서 환경보존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다가도 자신의 문제로 돌아오면 개발을 통해 자기가 소유한 땅값이 좀더
올랐으면 하는게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죠.

자신과 관계없을 때는 이른바 생명의 가치를, 관계될 때는 경제적 가치를
우선하는 거죠.

환경 문제에 관한 국민들의 판단기준 자체가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다는
얘기고 이것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나
생각합니다.

<> 맹지연 =좋은 지적입니다.

솔직히 환경론자들이 갖는 가장 큰 고민이 바로 그 부분이에요.

개인의 사유재산권이 강화되어 가는 현실 속에서는 환경을 지키자는
구호가 힘을 잃을 수 밖에 없겠죠.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주변의 쾌적한 환경없이는 자신의 재산권도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겠죠.

자신이 가진 조그만 땅에 대한 권리만 주장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죠.

좀더 폭넓은 사고가 필요해요.

<> 곽승현 =어느 한쪽 편의 논리만으로 문제를 풀어가기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복잡해졌어요.

좀더 많은 논의를 통해 양측이 공감하는 합의점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서로 노력한다면 "지속가능한 개발"은 도달할 수 있는 목표라고 생각해요.

<> 맹지연 =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하죠.

최근들어 기업이 자의든 타의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에요.

끝으로 이것 하나만은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늦게 시작할수록 비용은 많이 들 뿐이라는 것을요.

< 정리=박해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