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산=김주영 기자]

중부고속도로 음성출구에서 충북 괴산으로 이어지는 왕복2차선도로를 따라
1시간쯤 달리면 멀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농가들이 나타난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시골의 모습이다.

이 도로변에 조립식 막사 3채가 자리잡고 있다.

바로 "흙살림 연구소"이다.

서울대 농대 선후배 4명과 배재대 충북대에서 농학을 전공한 6명의 연구원
이 이 곳을 지키고 있다.

일류대 출신 엘리트 농학도들이 흙과 함께 살겠다며 인적 드문 농촌에
정착한 것이다.

"흙에는 수많은 균이 살고 있습니다. 작물을 길러주고 땅을 기름지게 하는
마술사들이 바로 이들 균입니다"

이태근 연구소장(38)은 "흙으로 자연을 되살리는 근본처방을 내놓겠다"며
이마에 묻힌 굵은 땀방울이 연신 훑어낸다.

연구소가 이곳으로 옮겨온 것은 지난 95년.

연구소 문을 연지 3년만이었다.

이 소장은 3억원을 들여 1천5백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토양분석기
염분측정기 진공배양기등 기자재도 들여 왔다.

담배인삼공사에서 따낸 프로젝트에다 괴산 음성지역 농민들의 지원을
합쳐 일단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이 소장은 "농민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농학연구소"라고
흙살림연구소를 자랑한다.

고향이 충남 서산인 윤성희 연구원(32).

그는 제주도 출신 부인과 결혼했지만 대학선배인 이소장과 뜻을 같이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윤씨와 같은서울대 농대 대학원출신인 박동하연구원(29)도 농업이 환경을
살리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흙살림연구소에 동참했다.

연구소의 홍일점 정연중씨(23)는 충북대 농생물학과 출신으로 종균관리와
배양을 맡고 있다.

흙살림연구소는 1천여명의 회원에게 영농에 관한 상담과 기술지도 교육을
하고 있다.

4백여가지의 미생물이 들어 있는 10여가지의 흙을 싼값에 공급하고 있다.

이들 흙에는 미생물의 기능에 따라 재미있는 이름이 붙여져 있다.

퇴비가 잘 썩도록 해주는 "생명토",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빛모음",
지력을 높이는 "흙살림", 사료에 첨가하는 "토실이", 잎을 잘 자라게 하는
"잎살림", 양어장의 수질을 정화하는 "도움이", 음식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주는 "부엌살림"..

연구소는 지난해 미생물이 들어있는 흙을 팔아 제법 돈을 벌었다.

그러나 연구소를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스스로 좋아서 한일이 아니었다면 벌써 그만 뒀을 것"이라는 연구원들의
설명으로 재정형편을 쉽게 가늠할수 있다.

"미생물균들이 농약과 비료를 완전히 대체할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흙을 살릴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되지 않겠습니까"

이소장은 제2의 고향에서 흙과 함께 살아가겠다며 오늘도 미생물들과
한판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연락처 0445-33-8179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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