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훈

최근 스위스의 IMD(국제경영개발연구원)보고서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대변하듯 우리나라의 경쟁력 순위가 4단계 내렸다는 IMD의
중간발표가 있었다.

IMD 중간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중국이나 태국은 물론 아직은
공업화의 불이 불지 않은 필리핀보다도 뒤진 것으로 나타나 일반인들이
의아해 하고 이 보고서가 과연 우리경제의 실상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 시각도 생겨나고 있다.

IMD의 발표에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 유독 우리나라 밖에
없음을 볼때, 우리 국민들의 경제걱정이 비상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러나 과연 IMD의 경쟁력 순위를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측정지표로
사용하여도 문제는 없는 것인지,IMD보고서의 분석결과가 국내에서
올바르게 이용되고 있는지 몇 가지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첫째 IMD보고서가 작성되는 경위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IMD에서는 각국의 경쟁력을 측정하기 위하여 8개분야 2백44개의
조사항목을 설정하고 경제성장율 설비투자 과학기술인력등 계량적
통계치를 입수하는 한편 해당 국가의 기업이나 경제연구소 등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에게 경영여건 근로의욕 정부규제 등 비계량적 요소에
관한 설문조사를 벌인다.

따라서 자기 나라의 경제구조에 불만이 많거나 경제구조 번혁의 고통을
겪으면서 장래를 불안하게 보는 의견이 지배적일수록 경쟁력 지표는 낮게
나오고 만족스럽거나 별 문제를 못느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경쟁력
지표가 실제보다 높게 나오게 된다.

결국 자기 나라 경제에 대한 국내평가 여론이 IMD라는 외부의 입을
통해 부메랑화되는 셈이다.

또 주관적 견해가 반영되기 때문에 불과 1~2년만에 그 순서가 크게
뒤바뀌는 불안정성의 문제도 있다.

일본의 경우 93년까지 세계 1~2위였던 경쟁력 순위가 97년에 11위로
크게 하락하였지만,이를 두고 일본제품이 이제 만만한 경쟁상대가
되었다고 여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둘째, IMD의 관심분야와 평가방법에는 국가별 발전전략이나 경제구조의
특성이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점도 있다.

현재는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그 동안 전략 적 산업 육성을 위하여
정부가 금융을 지배하고 향락산업등 서비스부문에 대해 대출을 규제한
것 등은 IMD의 경쟁력 측정에서 마이너스의 점수를 받게 된다.

반면에 중국이나 싱가포르와 같이 대외자본 유치에 의해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전략을 추진하는 나라들은 국제화의 모범생으로 평가되어
후한 점수를 받게 된다.

또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대처도 IMD의 경쟁력 측정에서
보면 기업간섭에 해당하여 부정적 평가를 받게 된다.

셋째, IMD보고서의 국가별 경쟁력 순위를 경제발전 수준과 혼동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저임금의 무기를 가진 개도국이 높은 기술수준의 선진국보다 경쟁력
순위가 높을 수 있는 것은 가격경쟁력 때문이지 선진국보다 경제가
더 발전하였기 때문은 아니다.

필리핀에 비해 한국의 경쟁력 순위가 뒤진 것은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구조조정의 혼미가 거듭된 것에 기인한 것이지 필리핀보다 경제수준이
낮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IMD보고서라는 것이 자기를 나름대로의 기준에 의해 경쟁력
순위를 작성한 것이라서 우리 경제의 성적표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IMD보고서에서 지적한 내용중에는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에
대단히 유익하여 귀담아 들어야할 부분이 없지 않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때 우리나라의 두드러진 특성은 경제적 자산이
상위권에 속하지만 운영능력은 하위권에 속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경제는 하드웨어적 측면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낙후로 인하여 경쟁력이 낮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 경제의 당면과제로 대두된 금융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나
정부규제의 완화, 노동시장의 유연화, 개방경제체제의 확립등과 상통하는
것이다.

과거 개발년대에 하드웨어적 측면의 성장은 해외자본과 기술을 도입하고
외국제도를 참고함으로써 목표 달성이 가능하였으나 현재 당면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적 측면의 변혁은 우리의 내면적 과제로서 외국제도나 정책의
단순한 모방으로는 해결할수 없다.

하드웨어적 성장시기에 통했던 "빨리빨리식"적당주의, 집단주의와
연고주의, 그리고 "밀어부치기식"졸속주의는 이제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오는 4월6일은 2000년은 향하여 1,000일이 시작되는 날이다.

오늘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경제의식및 관행, 그리고 경제운영 스타일이
과연 다가 올 미래의 경제환경 변화를 이겨낼수 있을 것인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