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지도자들이 경제대책회의를 구성, 경제살리기에 나섰다는걸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거엔 정치가 잘못돼도 경제는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정치만 민주화되면 잘되는 경제를 바탕으로 좋은 나라, 살기좋은 나라를
만들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정치가 잘못되면 경제가 어렵게 된다는걸 우리가 지금 뼈아프게 느끼고
있다.

정치권이 경제살리기에 나서면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치권스스로 현재의
경제난국을 초래한데 대한 책임이 어떤 것인지를 한번 따져보았어야 옳다.

그러나 어쨌든 정치권이 경제살리기에 나섰으니 경제난은 풀릴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도 좋은 것인가.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첫째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정책은 선택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해도 그 시행가능성을 따져보아야 하고 시행에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각 당에서 내놓은 좋은 방안을 종합해 놓는다고 해서 좋은
정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시행될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칫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둘째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펴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에는 위원회 기획단 회의 등 각종 경제기구가 있다.

여기에다 다시 경제대책회의까지 생겼으니 정책추진에 혼선이 생길 수도
있다.

서로 상충되는 정책이 우선순위가 분명하지 않은채 나열돼 있다면
정책집행부서가 오히려 정신을 못차릴수 있다.

셋째 현재의 경제난은 중장기적으로 접근하지 않고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국제경쟁시대에 고비용-저효율구조 때문에 경쟁력을 갖춘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경제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런데 김영삼정부의 임기가 1년도 채 남지 않았고 경제대책회의
활동기간도 연말까지로 잡혀 있다.

더욱이 대선 바람이 불면 정치권이 경제살리기에 합심노력할 여지가
없을건 뻔한 일 아닌가.

더욱이 정치권은 당장 효과가 나타날 방안과 인기정책을 내세우려는
속성을 갖고 있다.

경제를 정치논리 아닌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정치권의
이런 속성 때문이다.

예컨대 노동관계법을 국회에서 어떻게 다루었는가.

노동관계법은 OECD가입에 따라 선진국수준에 걸맞는 법을 만들고
우리경제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살리고자 개정하려
했던 것이다.

정치권이 노동관계법을 다룰 때 경제위기를 과연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회생을 위해 정치권이 할 일은 경제를 경제논리로 풀어갈 수 있도록
행정부와 기업을 도와주는 것에 그쳐야 한다.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를 만들어 놓고 경제를 살리겠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부터 하는게 순서다.

정치권이 경제가 어렵다는 걸 인식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정치를
깨끗이 잘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라는걸 다시 인식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