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 <한국경제연 산업연구실장>

기업가이나 사업자들은 담함을 좋아한다.

권력을 쥔 사람들이 이를 행사하고 싶어하듯 시장에서 독점력을 가질수만
있다면 가격과 물량을 조절하여 이윤을 더 챙기고 싶은 것이 사업하는
사람들의 속성이다.

200여년전에 이미 위대한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상인들이 오락이나 기분전환을 위해 모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만나면 그들의 대화는 향상 소비자를 우롱할 술수나
가격상승의 결의 따위로 끝맺는다"라고 적고 있다.

경제학자의 놀라운 혜안이 아닐수 없다.

이러한 담합행위는 흔히 가격인상과 생산량제한을 수반하여 일반
소비자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피해를 주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세계 어느나라를 막론하고 모두 독점규제법에 의해 이를
규제하고 위반할 경우 엄중하게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으로 담합에 의한 공동행위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작년 제지회사 3사의 담합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몰린 과징급이 무려
백 억원을 넘는 등 담합에 대한 처벌과 단속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에 대한 처벌강화만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정부의
공정거래정책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담합의 배후에는 정부의 규제가 도사리고있기때문이다.

담합은 본질적으로 쉽게 성사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카르텔에 대한 경제이론에 따르면 사업자들이 담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담합은 은밀한 밀약이 성사되어야 하며,이의 준수여부를 감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있어야 한다.

또한 배반하는 업자가 출현하는 경우 이를 응징할 수 있는 내부장치가
있어야만 담합은 성사된다.

설령 카르텔에 성공했다하더라도 개별 업자들은 이를 배반할 유인이
있다.

다른 업체가 모두 높게 가격을 유지하기로 합의한 상태에서 자기만
가격을 인하할 경우 돌아오는 이윤증가는 짭짤하기 이를데 없다.

이처럼 카르텔은 "자기파괴의 씨앗"을 가지고 있어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결국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담합은 정부의 개입이나 비호가 있을
때 뿐이라는 것이 이른바 시카고경제학파의 일관된 주장이기도 하다.

정부의 개입은 여러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우선 직접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을 제한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높은 인허가조건, 진입장벽이나 사업활동에 대한 규제가 대표적인
유형이다.

진입규제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산업 1,195개
가운데 약 43.6%인 5백33개 산업이 진입규제를 받고 있다.

바로 이런 규제가 경쟁을 제한하고 담합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법률에 의해 중소기업조합들에게 부여된 관급수요 배정권등은 사실상
신규기업들의 진입을 제한하고 기존업자 간의 경쟁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간접적으로 담합을 조장하는 사례는 정부의 가격 및 비가격규제에서
잘 나타난다.

영업질서 문란방지, 가격안정, 소비자 보호를 핑계로 노골적으로
기존업자들의 가격경쟁을 통제하여 담합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특히 가격규제와 관련하여 각종 표준가격, 권고가격, 행정지도가격 등은
기업들의 담합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수급상황과 기업의 경쟁력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상품이나
서비스가격이 정부으 유도에 의해 단일가격으로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의약품 요금, 버스요금, 이미용요금, 숙박업요금등이 대표적으로 이런
속성이 있으며 규제에 의한 사실상의 일물일가를 강요받고 있다.

한편 이러한 정부개입에 의한 경쟁제한이나 담합은 많은 부작용은
야기한다.

우선 정부가 개입한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처벌하지
못한다.

만약 현대그룹의 제철소사업진출을 정부의 관계부처에서 나서지
않았다면 다각도로 전개된 기존업자들의 방해노력은 경쟁제한 행위로
공정위의 조사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개입하면서 산업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경쟁제한 행위를 비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정부의 개입에 의한 담합은 그 부작용도 오래간다.

가격규제가 없어진 이후에도 과거의 관행대로 공동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의 수수료는 과거 한국은행의 창구지도에 따라 단일화되었으나
창구지도가 없어진 지금까지도 사실상 단일요금을 고수하여 공정위으
조사대상에 단골로 오르고 있다.

또한 정부개입에 의한 "제도화된 카르텔"은 사업자들의 이른바
지대추구비용 (rent-seeking costs)을 야기한다.

카르텔이나 담합의 제도화를 위해 이해관계집단의 로비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담합의 배후에는 정부가 있다.

200여년전에 아담 스미스는 이미 정부의 이런 역할에 대해 충고를
하고 있다.

상인들은 기회만 있으면 정치가들의 귀에다 속삭인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자유경쟁을 제한해 달라고.

이제 담합근절을 위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이 매우 분명해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제한의 효과가 불투명한 카르텔에 대해 기업을
직접적으로 조사하기보다 오히려 경쟁을 제한하는 정부의 규제철폐
자체에 더 역점을 두어야 마땅하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뎀세츠(Demsetz)가 미국 공정거래위원회에
던지는 충고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매우 사소하고 부적합한, 심지어는 위험한 분야까지
기업을 규제하는데 많은 인력과 자원을 낭비하면서 정작 중요한 반경쟁적
규제의 철폐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도 귀담아
들어야할 뼈있는 지적이다.

공정위가 기존의 사냥터에만 연연해 한채 경쟁제한규제의 철폐에 적극
나서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규제완화의 모든 업무를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키로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를 계기로 "규제와의 전쟁"을 알리는 공정위의 강력한 선전포고가
있기를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