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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개정의 일등공신은 노동행정의 총수인 진념 노동부 장관이다.

그는 법개정 과정에서 온갖 마음고생을 했다.

정부 부처간, 청와대 수석들간에 의견이 엇갈려 정부안을 확정짓지 못할
때는 정말로 장관직을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특히 지난해 12월26일 신한국당의 노동법 기습 통과로 노동계의 총파업이
전개됐을때 그는 며칠간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고난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아무튼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는 노동법 개정이 법제정 이후 44년만에
성사됐다.

그러나 진장관은 요즘 심경이 착잡하다.

최근 사의표명이후 온갖 추측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의 사의표명에 대해 일부에선 "건강상의 이유"란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또 한편에선 "다른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며 의구심을
품고 있다.

진장관을 만나 법개정 배경과 법개정 이후 산업현장에 펼쳐질 새 노사문화의
모습, 그리고 사의표명은 왜 했는지 직접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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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윤기설 사회1부 차장 ]]

-노동관계법이 44년만에 전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해당사자들의 강한 반발을 감수하며 법개정을 단행한 배경과 그 의의는
무엇입니까.

"노동법을 전면적으로 고치기로 한 것은 우리 경제의 고비용-저효율 체질을
개선하고 대립과 갈등의 노사관계를 참여와 협력의 관계로 바꾸기 위해서
였습니다.

경제여건은 급변하는데 우리나라 노동법 골격은 40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바람에 우리는 대립적 노사관계를 청산하지 못했고 경직될대로 경직된
노동시장은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21세기를 대비하고 노사가 함께 이기는(WIN-WIN) 방안을 마련
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사안에 따라 노사간에 이해가 엇갈릴수 있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노사가 모두 이기도록 노동법을 고쳤습니다.

노사자율교섭의 기반, 다시 말해 노사자치의 틀도 갖췄습니다"

-그런데도 노동법 개정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그대로 두는 편이 나았다"
는 소리가 높고 노동계 역시 여러가지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와 경영계를 모두 만족시키는 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노사의 만족과 불만족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불만족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국내외에서 경영여건이 급변하고 있는 지금 법을 고치고 노사관계를 개선
하지 않으면 공멸한다는 사실을 노동계와 경영계는 유념해야 합니다.

변화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노사가 힘을 모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다같이 이길수 있습니다.

이번 법개정으로 침체된 경제가 살아나고 노사가 동반성장할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믿습니다"

-법이 바뀜에 따라 산업현장의 노사관계는 대대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습니다.

법개정 첫해인 올해는 새법이 정착하는 과정에 상당한 진통을 겪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추진한 노사개혁은 노사의 의식과 관행을 고치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걱정하는 만큼의 커다란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노사관계는 한마디로 인간관계입니다.

노사가 서로 믿고 가슴을 열고 협력할때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고 근로자
삶의 질도 개선됩니다.

특히 새법에는 근로자들의 무분별한 쟁의행위를 줄이는 안전장치가 곳곳에
명시돼 오히려 평화적이고 질서있는 쟁의관행이 정착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무노동-무임금 원칙도 명문화돼 예전처럼 파업을 위한 파업은 많이
사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제는 파업비용을 노조와 노조원이 부담해야 합니다.

이와함께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노동위원회의 조정을 거치도록 한 것도
노조의 파업돌입을 신중하게 만들도록 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래도 노조가 정치활동을 선언하는 등 예전의 노동운동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노조의 정치활동금지가 부분적으로 해제됐다고 해서 노조가 정치세력화를
지향하고 사회개혁을 부르짖고 나서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우리는 지금 한 시대를 마감하고 21세기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근로자들은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싸워 이기도록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근로자 삶의 질도 좋아집니다"

-경영계는 복수노조 허용에 대해 몹시 신경을 쓰는 것같습니다.

상급노동단체간 조직경쟁이 지나치면 산업현장이 어수선해지고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우려도 하고 있고.

"법이 바뀐 만큼 노동계도 많이 변하겠지요.

법외단체나 임의적 협의기구들도 노조 설립절차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설 것입니다.

상급단체간 세력확장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 경쟁이 과열되면 사업장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단위기업 노사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다소의 일시적 부작용은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외단체들이 제도권에 들어오면 적절한 위상을 차지한뒤 합리적인
범위에서 활동할 것으로 봅니다.

정부는 상급단체간 경쟁이 과열되거나 불법적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도록
지도할 방침입니다.

무엇보다 공정한 룰과 법에 따라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지도하고 생산과
업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유도할 것입니다"

-새 노동법이 시행된지 보름만에 6대 도시 시내버스노조가 새법에 명시된
조정전치주의를 무시하고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파업이 하루에 그치긴 했지만 국민들은 불편을 겪었고 새 법이 원만히 정착
될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좋은 법을 만드는 일보다 이를 제대로 지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내버스 파업은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도록 지도했는데도 이를 무시한데 대해서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정국이 어수선하고 경제는 어렵습니다.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힘을 한데 모아야 합니다.

정부는 앞으로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새 노동법을 국민들
에게 이해시키고 노사가 화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힘쓸 것입니다"

-새 노동법 시행에 따른 산업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정착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노사자율교섭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노사간에 힘의 균형이 맞아야 화합이 이뤄집니다.

힘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대등한 입장에서 상대를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는 법개정으로 노사가 대등한 입장에서 상대를 생각하고 대화하고
협력할수 있게 됐습니다.

참여와 협력의 노사관계를 구축할수 있는 장이 펼쳐진 셈이지요.

예를들어 근로자 참여및 협력증진법의 경우 노동계 요구에 비해서는 미흡
하지만 종전의 노사협의회법에 비하면 상당히 진일보한 것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노사가 합의하도록 했고 종래 50인이상 사업장에
국한했던 노사협의회 설치도 30인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했습니다.

노사는 이번 법개정 취지를 살려서 대화하고 협력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합니다.

정부는 노사자율교섭 기반을 마련한데 만족하지 않고 근로자 복지증진에도
주력할 방침입니다.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주거안정을 지원하고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데
힘쓸 것입니다.

중소기업 밀집지역에는 근로자 종합복지시설을 건립하고 중소제조업체에서
장기근속한 기능인을 우대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노사가 화합하도록 뒷받침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입니다"

-새 노동법에는 기업의 생산활동을 탄력적으로 할수 있는 변형근로시간제
등이 많이 포함됐습니다.

그런데 노동계는 이들 제도가 도입되면 임금이 크게 준다고 아우성이고
경영계는 임금보전 방침을 세우라는 정부측에 불만입니다.

"변형근로제는 사용자가 근로시간 형태를 마음대로 바꾸게 하는 제도가
아닙니다.

변형근로제를 도입하려면 노사가 다같이 필요성을 느끼고 충분히 협의해야
합니다.

변형근로제를 도입한뒤 임금이 감소한다면 근로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임금보전을 명시한 것입니다.

변형근로제를 제대로 운영할 경우에는 노사 모두에게 이롭습니다.

근로자는 여가를 활용할수 있게 되고 사용자로서는 일감이 많고 적음에
따라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생산성을 높일수 있습니다"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최대의 쟁점은 고용조정제, 다시말해 정리해고제
였습니다.

근로자들은 자칫 일자리를 잃게 되지 않나 걱정하고 있습니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고용조정은 종래 판례에서 밝힌 정리해고 요건과
절차를 그대로 법에 담은 것일 뿐 새로운 해고제도는 아닙니다.

최근의 고용불안은 근본적으로 불황과 기업의 구조조정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고용조정제가 법에 명시됨에 따라 실업자가 늘게 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도입 취지를 정확히 알리고
적극 지도해 나갈 것입니다.

부당해고시에는 이를 무효화함은 물론 엄정하게 처벌할 방침입니다.

고용조정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배치전환, 계열사 전보 등 해고를 회피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지도할 계획입니다"

-고용불안이 국가적 관심거리로 부상했습니다.

넉달만에 실업자가 17만명이나 늘었다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장관께서도 최근 강연회석상에서 "고용창출 없는 경제성장이 우려된다"고
지적한바 있는데 뾰족한 대책은 없습니까.

"경제발전이 진행됨에 따라 성장이 가져오는 고용창출효과는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우리 경제는 지금 고도성장기에서 중성장기로 바뀌고 있고 제조업 비중이
줄어드는 등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어떻게 해야 고용안정을 기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부 노동계
경영계가 다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합니다.

정부만 나서가지고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래 국내시장을 보호하면서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백화점에 가 보십시오.

우리 기업들은 국내시장에서도 선진국 제품, 후진국 제품과 힘겹게 싸우고
있습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 3만달러선을 넘어서려면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고용안정도 기할수 있습니다.

국내시장에서도 밀리고서야 일자리가 온전할수 있겠습니까.

경쟁에서 이기려면 국민 각자가 직무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개인도 살아남기 어렵게 됩니다.

정부는 근로자들이 직무능력을 개발할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양성훈련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직업훈련체제도 향상훈련
재훈련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에서 노사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함에 따라
노동법 개정은 넉달이상 심한 진통을 겪었습니다.

법개정과정에서 아쉽고 힘들었던 때도 많았을 텐데요.

"노사합의로 노동법을 고치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정부는 대타협이 이뤄지길 바라고 기다리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노사는 법개정 취지에는 찬성하면서도 개별사안에 대해서는
이해가 엇갈려 합의하지 못했습니다.

작년말 법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처리되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논의와 토론을 거쳐 대타협을 했더라면 총파업은 피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유임된지 보름만에 장관직 사의를 표명해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의를 표명해야 할 무슨 사정이 있었습니까.

"경제가 가뜩이나 어려운데 노동법 파문으로 2조6천억원의 생산차질이
발생했습니다.

법개정을 추진했던 주무장관으로서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제는 법개정이 끝났기 때문에 새 사람이 장관직을 맡아 새로운 노사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건강도 안좋아 좀 쉬고 싶었던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표가 반려됐으니 다시 맡은바 임무에 열중해야지요"

-재신임을 받았으니 새 노동법이 순조롭게 자리잡고 노사화합 분위기가
확산될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셔야겠습니다.

< 정리=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4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