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을 맞은 대학가에 정치바람이 일고 있다.

대통령선거캠프에 참여하려는 신세대 정치지망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일부는 정당의 청년조직 등 공식조직에 몸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 선거캠프의 비선조직으로
뛰고 있다.

공부를 하면서 정치맛도 볼수 있는 자원봉사자도 크게 늘고 있다.

정치풍토 개선을 위한 공정선거감시단 참여도 활발하다.

대통령선거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승천을 꿈꾸는 용들이 대학가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상아탑에 일고 있는 정치바람은 갈수록 드세질 것같다.

서울대 학생 15명으로 짜여진 "참여정치단"의 최승현(23)씨.

그는 요즘 참여정치단의 활동방향을 모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생들을 상대로 대규모 리서치를 할까"

"대통령선거캠프 관게자를 초청하여 토론회를 가질까..."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그만큼 고민거리가 많아지기 시작한 셈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4년에 재학중인 최씨가 "참여연대"와 인연을 맺은 것은
김영삼 정부의 개혁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94년 봄.

그는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정치운동보다는 실질적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어낼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과선배의 소개로 시민운동단체인 "참여연대" 사람들을 만났다.

"의정감시활동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87년 민주화 대투쟁 이후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라 볼수 있는 의정활동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분석.평가해서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라는 논리였지요.

전적으로 동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직한 것이 과학우 10여명으로 구성된 "관악 의정감시활동단".

그해 정기국회 때부터 활동에 들어가기로 하고 여름에 "참여연대" 소속
교수로부터 교육받았다.

개혁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국회에서 논의될때 희석될 가능성이 많은
"공정거래및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과 "내부비리 고발자 보호법"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하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성수대교 붕괴와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인해 정기국회가 계속 공전돼 회기가
짧아졌지요.

현실정치의 벽도 높았어요.

법안에 대한 실질적인 교섭이 진행되는 소위원회는 물론 형식적인 처리과정
이 이뤄지는 상임위원회에도 접근하기 어려웠죠"

이렇다 할 활동을 펴보지도 못한 채 한해를 보냈다.

풀뿌리민주주의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

이번에는 관악구 주민단체인 "관악주민연대"와 손잡고 관악구 의회활동을
감시하기로 했다.

의회록을 분석하고 방청기를 지역신문에 게재하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나 역시 쉽지 않았다.

그 지역 토박이들인 구의원들은 "너희들이 뭔데" 하며 비협조적이었고
학생들이 지역살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갖고 관여하기가 어려웠다.

96년 3월 일상적인 의정감시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관악 의정감시활동단"을
해체한다.

대신 정치학과를 비롯, 언론정보학과 경제학과 학우 15명이 모여 "참여정치
단"을 만들었다.

"의정감시활동에 그치지 않고 폭넓게 현실정치에 참여하려고 했어요.

활동방향을 크게 두가지로 잡았습니다.

학생들의 의견을 결집해서 우리들의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

그리고 시민운동단체와 연계, 권력을 감시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우겠다는 것"

곧 4.11총선이 닥쳐왔다.

먼저 선거연령을 20세로 정한 법률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대부분 선거권을 갖지 못한 대학생 1, 2년생들도 투표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능력과 자격을 갖췄다는 주장이다.

그 다음으로 관악주민연대와 함께 거리에 여론상황판을 마련, 시급히 해결
돼야 할 문제들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개질의서를 작성, 각 후보들에게 보내고 공개후보토론회를
요청했다.

답변서는 왔지만 토론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총선을 치르면서 느낀 점이 많았어요.

시민들이 주최한 토론회인데 참석안해도 그만이라는 후보들의 태도에
경악했어요.

주민들의 참여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선거공간에도 후보자와 유권자만
있을뿐 양쪽을 연결하는 통로, 즉 중간영역은 턱없이 빈약했죠.

하물며 일상적인 공간에서 정치인과 국민들의 의사소통의 길은 거의 차단돼
있습니다"

신세대의 정치 무관심은 기존 정치에 대한 환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이같이 참여할수 있는 통로가 전무한데서 오는 무력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이러한 경험은 "참여정치단"이 나가야 할 방향을 확실히 정해주었다.

"중간영역을 활성화시키는 것"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대선이 다가온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잡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규모 리서치 실시" "캠프관계자 초청토론회" 등 작품을 내놓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글 송태형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