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세계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살아남아 기회를 만들고 번영해야 하는 것은 오늘의 한국경제를 가꾸는
우리 모두의 소명이다.

우리가 고비용 저효율의 경제체질을 바꾸기 위해 비상한 각오로 수술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한국경제에 대한 세계경쟁력 평가는 냉정하기 이를데
없다.

지난 26일 스위스 로잔느 소재 작은 특수경영대학원인 IMD(국제경영개발원)
가 발표한 세계 46개국의 1997년 세계경쟁력 평가 중간보도가 우리에게
충격을 준 것은 한국경제가 겪고 있는 경제.사회적 위기상황을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총체적 경쟁력이 대만(24위) 중국(27위) 태국(28위)뿐 아니라
필리핀(30위)에까지 밀려 46개국 가운데 31위라는 사실은 정말 당혹스러운
일이다.

GDP와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11위인 한국경제가 이처럼 낮은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 것은 언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생산성은 아직도 OECD 회원국과 경쟁국에 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근로자 1인당 생산성(19위), 시간당 부가가치 생산성(28위), 제조업
근로자 1인당 생산성(25위), 1인당 국민소득(27위), 어느 지표로 보더라도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생산량이 크더라도 생산성이 낮은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의 경쟁력이 뒤지는데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열린 세계경제속에서 경쟁력의 실체는 기업의 경쟁력이며 국민의 혁신능력
이고 정부의 행정품질이다.

IMD는 1989년부터 같은 연구팀을 유지하면서 "세계 경쟁력"을 연구해 왔고,
그동안 10권의 보고서를 매년 발간하였다.

세계의 주목을 받게된 것도 바로 GDP나 생산성이 설명하지 못하는 경쟁력의
실체를 총체적으로 분석해 왔기 때문이다.

IMD 보고서의 정의에 따르면 경쟁력은 한나라가 자원과 의사결정 프로세스
등을 관리하고 이들을 경제및 사회적 틀로 결합하여 가치를 창출하고 국부를
증가시킬수 있는 능력을 의미 한다.

즉 경쟁력을 관리하기에 가장 적합한 경제적 사회적 방식을 태하되 경제
정책과 비즈니스 규칙을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원칙과 시장원리에
맞도록 해야 능력있는 사람과 경쟁력있는 기업이 모여드는 매력적인 기업
경영환경이 구축되고, 이같은 바탕위에서만 세계적인 우수 상품이
만들어지며 공격적인 사업능력이 발휘될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IMD 보고서에 사용된 기초자료는 각종 국제기관의 1백70여가지 통계자료
외에도 27개 자매연구기관을 통해 조사 수집되는 80여개항목의 최고 경영자
설문조사가 포함된다.

각 나라에서 현지 활동을 벌이는 내수기업 외국기업 다국적기업의 고급
경영자들의 현장감각이 활용된다.

매년 2월말부터 3월초에 걸쳐 집중적으로 조사되고 즉시 통계처리 되어
평가작업에 활용된다.

이번에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국내경제활력부문에서 96년 4위에서 11위로
급락한 것은 노동법 개정 파업, 한보 부도사태, 정치 불안이 성장전망을
어둡게 했고 엔저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를 빠르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IMD의 자매연구기관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한국측 국가경쟁력 평가를
맡고 있으면서, IME의 경제연구팀의 데이터 수집과 분석작업의 객관성과
기민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세계 46개국을 5년에 걸친 패널자료로 구축하여 약 1천5백개의 데이타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유지관리하고 새로운 경쟁력 개념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계량분석이 그러하듯이 IMD 평가도 특정개념과 특정데이타에 입각한
하나으 평가일 뿐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국가경쟁력 분석가운데는 가장 포괄적이고 체계적이며,
한계내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분석이기에 이번 중간발표자료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시사점은 많다.

첫째 경쟁력평가는 우리들 자신의 과거에 대비한 평가가 아니다.

시장에서의 상대적 평가이다.

세계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로 경쟁하는 기업과 이를 뒷바침해 주는
국민의 창조적 역량, 그리고 정부의 행정서비스의 상대적인 국제경쟁력이다.

등소평 사망이후에도 변함없는 중국정부의 개발의지, 외국인의 투자매력을
높여 활력을 유지하고 있는 태국 국내경제, 정보화 혁명으로 정부를 개혁
하고 경쟁력있는 선진국의 일류기업을 끌어들이는데 주저하지 않는
말레이시아는 이미 우리기업의 부러움을 사는 경쟁상대국이 되어가고 있다.

둘째 경쟁력은 우리의 경쟁상대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의 변화능력에 의해서도 강화된다.

노르웨이는 1993년의 21위에서 12위 10위를 거쳐 현재 6위로까지 올라 왔다.

노르웨이가 추진한 가장 큰 변화는 정보기술을 이용한 정부기능
리엔지니어링이었으며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
혁신이었다.

뉴질랜드는 1991년 근로계약법으로 유연한 노동시장을 구축했으며 정부
책임법과 기업회계식 재정관리에 성공하여 5년만에 18위에서 10위로 뛰어
올랐다.

영국도 금융빅뱅과 노조민주화에 성공하여 16위에서 12위로 올라 다시금
세계금융의 중심이 되었고 투자매력이 높은 일자리 많은 나라가 되었다.

우리가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정부 기업 국민 은행
모두가 변해야만이 경쟁력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셋째 경쟁력은 보호와 지원속에서 정부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은 경쟁을 통해서만이 키워진다.

규제를 풀어 마음껏 뛰게하고 자유로운 선택에 스스로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지원에는 감독과 규제가 따르고, 특별우대에는 생산적인 경쟁력있는
국민과 기업에게 지는 빚이 있다는 사실이 주지되어야 한다.

하시모토총리가 대장성 "분해"를 기치로 걸로 6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음
에도 국민과 기업의 신뢰가 떨어져 세계 2위에서 11위로 추락한 일본의
행정을 베끼는 일을 이제는 우리관료들이 그만두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