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는 K씨는 주식매매를 3~4년에 한번 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번 투자를 했다하면 그 규모가 수십억원에 이르죠.

어떤 투자와도 비교되지 않는 높은 수익률을 올립니다.

절대로 손해보는 법이 없지요"

D증권의 한 임원이 밝힌 주식 장기투자 성공담이다.

중소기업체를 경영하는 K씨는 철저히 잔파도를 무시하고 큰파도타기를
즐긴다.

평소에는 주식시세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경기가 깨어날 듯 할 때 우량주를 사모았다가 경기가 좋고 주식시장이
흥청거릴 때 주식을 처분하곤 했다.

그런 K씨가 요즘들어 주식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투자시기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K씨가 아니더라도 올해가 "주식 장기투자의 적기"라고 말하는 증권전문가
들은 수두룩하다.

경기가 나빠질만큼 나빠진데다 주가도 "가격 파괴"라고 할만큼 큰 폭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마다 "밀짚 모자는 겨울에 사야 한다"며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손님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경기회복 시기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세일에 나선 그들마저 주식을 사들이기는 커녕 여지껏 물량을 줄이고 있다.

과연 밀집모자를 사기엔 아직도 한겨울이 저만치 멀리 있는 것일까.

"언제 봄이 온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미 눈덮인 한겨울 속에서
얼음장은 얇아지기 시작했다"고 보는 이들은 총통화(M2)와 싯가총액의
관계부터 끄집어 낸다.

실물경제의 사이즈를 측정해 볼 수 있는 총통화(M2)는 싯가총액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총통화가 40조원를 넘어서기 시작한 88년 이후 싯가총액은 대체로
총통화와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주가가 용솟음칠땐 싯가총액이 총통화의 2배까지 부풀지만 대체로
90~1백30%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소팔아 주식을 살 정도로 시장이 과열됐던 89년엔 싯가총액(95조원)이
총통화(50조원)의 1.9배에 이르렀지만 혹독한 불황으로 중소기업 사장들의
자살극이 벌어지던 92년에도 싯가총액(84조원)이 총통화(86조원)의 97%나
됐다.

그런데 지난 연말엔 싯가총액(1백17조원)이 총통화(1백74조원)의 67%까지
떨어졌다.

경제규모에 비한 주가위축 정도가 심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한겨울을 알리는 신호"라는 것.

경기 사이클을 보고 "봄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진단하는 이도 적지 않다.

요즘 불황을 놓고 구조적인 문제라며 "경기순환론은 쓸데 없는 것"이라는
시각이 없지 않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열심히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이 경제의 본성.

숱한 명예퇴직과 기업의 사업구조 조정 노력, 새로 싹트는 EVA(경제적
부가가치)경영 같은 것은 그런 돌파구의 하나다.

경기연구로 밥을 먹고 사는 경제연구소들도 대체로 올 3분기 내지는
4분기부터 경기가 회복세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사상최대의 경상수지 적자를 한겨울로 해석하고 있다.

또 달러당 8백80원이 넘은 원화환율은 시차를 두고 수출을 밀어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 사이클도 적지않은 암시를 던져 주고 있다.

지난 89년 4월1일 1,007.77까지 치솟았던 종합주가지수는 92년 8월21일
(459.07)까지 3년4개월에 걸쳐 54.4%가 떨어지는 선에서 하락세를 마감했다.

지금의 주가낙폭도 그에 못지않다.

94년 11월8일 1,138.75의 꼭지점을 기록했던 주가는 올해 1월7일 611.05로
46.3%나 추락했다.

2년2개월간 올랐던 주가가 2년3개월 가까이 떨어졌으니 대세 전환점을
모색할 때도 됐다는 것.

연말에 치르는 대선도 중요한 투자 변수.

선거를 치르는 동안 정치권으로 돈이 몰리고 여야가 진검을 들고 각종
폭로전으로 승부를 벌이면 주가는 맥을 쓰지 못한다.

그러나 요란한 선거전일수록 선거가 끝나면 주가에 탄력이 붙게 마련이다.

여러차례 경험한 일이다.

이런저런 점을 살펴보건대 한국경제가 남미경제를 닮아가지 않는 이상
97년은 주식 장기투자의 적기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고 아무 주식을 사도 좋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미래의 수익성이 좋은지 어떤지는 사업가가 가장 잘안다.

그들이 투자자금을 아끼지 않는 분야, 경기회복과 함께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종목이 장기투자 대상으로 적격이란게 증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이다.

< 허정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