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도 좋지 않지만 최근 독일 경제도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실업자 수가 2차 세계대전후 최대로 5백만명에 육박하고 실업률이 12%를
훨씬 넘어섰다.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 만하임대학교도 주정부예산 삭감으로 변동비의
절반정도를 줄여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모두들 한편으로는 긴축경제를, 다른 한편으로는 민간기업의 투자유인을
위하여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독일의 대외 무역흑자는 꾸준히 증가하여 2월 현재
사상 최대의 수치를 기록하였다.

작년 한 해의 순수 흑자만도 약 7백억달러에 달하고 있고 물가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이는 우리 경제가 나쁜 것과는 구조적으로 차이가 있다.

우리는 작년 한해만 하더라도 대외수지 적자를 2백억달러이상 낸데다 외채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독일경제는 좋지 않다고 하지만 아직 경쟁력이 튼튼하다.

다만 국내 고용불안만이 증가되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는 구조적으로 경쟁력
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두나라 사이의 경제적 불안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나는 독일교수들에게 물어 보았다.

독일 경제가 정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대외수지는 계속 흑자를 내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들은 솔직히 말해서 지금 경제가 어렵긴 하지만 독일인은 엄살을 부리는
습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데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들은 무한경쟁시대에 대응하여 경제하부구조인 인프라스트럭처(infra
structure)를 튼튼하게 재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유럽통합 과정에서 독일 민족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도 당면 과제이지만, 세계 속에 독일의 위상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지적했다.

특히 동서독 통일후 독일의 사회적 인프라가 허약하기 짝이 없어졌기 때문에
지금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인프라는 도로 항만 철도 전기 등의 경제물질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못지 않게 세제 금융 교육과 더불어 근면 성실 절약 등 사회정신적
측면의 인프라도 중요하다.

독일은 그동안 꾸준한 경제성장과 풍요 속에서, 지나친 사회보장및 지원
제도에 따라 근면성과 성실성, 그리고 절약성이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이는
구 동독지역에서 더욱 더 뚜렷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독일 기업들은 높은 임금과 낮은 생산성, 그리고 까다로운 규제조치
등으로 국내투자를 꺼리고 해외로 빠져 나가는 추세를 보였다.

이를 막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산업과 기업의 구조 조정과 더불어
사회적 인프라의 재구축 노력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실업의 고통을 면할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 견해이다.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독일 금속노조가 마침내 작업시간의 단축을 통하여
고용기회 배분과 그에 따른 임금감축과 더불어 근면성 제고안을 내놓고 있다.

고용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고용창출을 위한 노력을 제일의 과제로
삼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경영자들의 고용창출에 대한 노력이다.

경영자들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구조조정으로 인하여 인력조정과
해고는 피할수 없지만, 이 과정에서 야기되는 고용불안을 최소화 시키기 위한
고용창출의 노력을 다양하게 모색하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목표를 한편으로는 이익과 시장확보를 향한 경쟁력 강화로, 다른 한편
으로는 구성원의 고용창출을 위한 새로운 직무및 직능 개발로 동시에 추구
하는 경영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전자를 기업의 경제적 성과, 후자를 기업의 사회적 성과라 할수 있다.

기업의 목표로서 경제적 가치창출 뿐만아니라 사회적 가치창출의 노력도
적극 모색함으로써 노사공동체와 동반자적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볼수
있다.

우리가 독일을 그대로 모방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독일의 사회적 인프라 재구축을 위한 노사공동체 노력은 우리나라도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주요한 과세로 삼아야 될 줄로 안다.

그동안 기업인의 기업과 사회를 위한 노력을 평가해주지도 않고 투쟁과
갈등만 부추기는 노동계에 실망, 정말 모든 것을 다 집어 치우고 싶을 것
이라는 경영자의 심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산업사회의 가치창출 주체로서 경영자는 이러한 심리적 갈등을
극복하고 국가와 사회발전을 위한 노사공동체 형성의 선도자로서 고용창출의
책무를 다하여 기업의 사회적 가치창출의 목표를 적극 수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노조는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시대에 근로자의 고용안정과 생활의
질 향상을 위해 근면성 제고를 위한 사회구조조정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협력적인 참여를 적극
추진시킴으로써 화합적이고 공동체적인 노사관계를 이룩하도록 모든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