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을때 샌프란시스코의 한국미술 3000년의 전시회와 로스앤젤레스
카운터 뮤지엄의 "한-중-일 문화예술" 전시회가 있어 참관하게 되었다.

3국의 문화유물을 둘러 보며 새삼 한국인의 긍지를 느꼈다.

일본의 미술품은 화려하긴 하나 기품이 없었고, 중국의 거대하면서도
섬세한 미술품들은 경탄을 불러 일으키긴 했지만 한국미술품들의 탁월한
아름다움과 비교할수 없었다.

우아함과 소박함, 여유로움이 돋보이는 우리 미술품은 미의 정수 바로
그것이었다.

해남반도 남단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 고산 윤선도 선생이 말년에 살았던
곳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어부사시사"의 산실이다.

그 섬에 윤고산이 시를 짓고 연못 가운데 바위섬에서 춤을 추며 연못위로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즐겼다는 세연정이라는 정원이 있다.

구불구불 흘러내려 모인 개울물이 연못을 이루고 그곳에 있는 몇 백년 되는
바위들을 위감았다.

동쪽의 좌우엔 동서대, 남쪽엔 못속에 그림자가 거꾸로 비치도록 옥소대라는
석대를 쌓았다.

못 주변에는 소나무 대나무 단풍나무 삼나무들이 어우러져 있고 정자는
못의 중앙에 위치하여 하늘빛 바다빛 천태만상의 변화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굽이굽이 보이는 경관들이 모두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였다.

그 정원에 들어선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가장 조선적인 정원으로, 베르사이유의 정원과 헌팅던 라이부러리의 정원,
일본 오사까성의 정원과 비교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조선적인 정원에서 시조를 읊고 춤을 추기도 하고 당위에서
현악을 연주케 하여 자연과 어우러졌다니 미의식의 극치가 아니었나 싶었다.

불행히도 세연정은 일제시대에 정원의 한쪽을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뺏겨
두동강이 나버렸다.

그런데도 정부나 군청의 보호관리를 받지 못하고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무료인지라 방문객들은 대단치 않은 문화재로 알고 이 정원을 훼손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정부가 금년을 "문화유산의 해"로 정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 모두 정부에만 의존하지 말고 조상이 남겨준 소중한 문화재를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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