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가 잘못되고 있다고 누구나 이야기한다.

우리경제가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된지는 오래이다.

잘못된 것을 어떻게 고치고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지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처방이 나와있다.

그런데 왜 현실은 한발짝도 처방대로 움직이지 않는가.

역사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핵심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모순적 비양심적 비도덕적 몰사회적 상식이하의 행동을 하는 한
역사는 퇴행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역사의 흐름을 반추해 볼때 21세기 세계경제를 지배할 이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경제도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자본주의
시장경제" 쪽으로 가야만 한다.

기업인은 모두 상당수의 정책담당자, 그리고 소수나마 정치인들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한다고 주장은 한다.

그러나 우리경제의 현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는 거리가 있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자본주의를 한다고 하면서 자본주의의 근간을 뿌리째 뒤흔드는 정책을
스스럼없이 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2대지주는 철저한 사유재산권 보장과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인데 재산권침해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해주는 것보다 제약을 가하는 것이 더 보편화되어 있다.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는데 왜 우리는 바뀌지 않는가, 우리는 시장경제를
왜 실천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들의 뿌리깊다 못해 체질화되다시피한, 그러나 자각하고
있지 못한 "효율"아닌 "형평"위주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형평주위의 사고방식은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되고 고질화되어 있다.

"형평"위주의 사고를 "효율"위주의 사고로 전환하는데는 정치인 정부
언론 및 지식인 각종 사회단체가 앞장서야 한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개각이나 인사철이 되면 사회의 공기인 언론에 많은 인물들의 하마평이
오르내리며 나름대로 정리되어간다.

또 정리되는 과정은 철두철미하게 "형평"위주로 간다.

나라를 살리려면 그 자리와 책무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구이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언론의 초점은 어느 지역 출신이 많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형평"에 초점을 두고 사람을 선택하게 유도한다.

그러고는 갑자기 "효율"을 강조하며 무능하다 무식하다고들 떠들고 있다.

우리의 정치현실은 어떤가.

소위 김씨성을 가진 사람들이 깃발만 들면 정당이 되고, 공천만하면
당선이 된다.

선거 때마다 같은 주제를 두고 정반대의 주장을 펴도, 어제와 오늘의
주장이 극과 극을 달려 달라도 유권자들은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즈음 대통령의 아들문제로 온 장안이 시끄럽다.

정치인들은 앞다투어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탓하는가.

잘못된 부분을 감춰두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잘못된 부분은 철저히 밝히고 고쳐야 한다.

우리 모두 남의 잘못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자기성찰을 먼저 해야 남에게
설득력이 있고 따라서 사회가 발전한다.

공자는 "출신을 만들려면 녹을 많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요즈음은 충신이 없는것 같다.

돌아서면 나랏님을 욕한다.

아마도 나랏님이 녹을 많이 주지 않았던 것같다.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나라의 곡간을 채울 수도 없고 나라의
곡간이 비어 있으면 충신이 나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공자는 어떻게
설명할까.

우리는 이제 제대로 된 "시장 바로 세우기"를 해야 한다.

"시장 바로 세우기"가 제대로 되면 우리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고
"정치하기 어려운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경제의 고질적 문제는 고비용-저효율 구조라고 한다.

고비용은 노동시장 자본시장 토지시장이 시장으로서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저효율은 경쟁의 부재에서 야기되었기 때문에 효율을 높이려면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

이것은 모든 상품시장과 요소시장에서 시장이 시장으로서 기능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문제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정부 정치권 언론이라고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침체의 나락에 빠져 있는 우리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
정치권 언론을 비롯한 국민모두가 제대로 된 시장 바로 세우기, 아니
시장만들기를 해야 한다.

제대로 된 시장만들기를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부분적으로
불가피하다.

일정부분 정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더 이상의 정부때리기는 경제 살리기에도, 나라 살리기에도 의미가 없다.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왜 해야 하는가를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사고의 틀, 특히 정치권과 언론의 사고의 틀이 근원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디지털방식의 통신혁명시대에 아날로그방식적 사고는 맥을 못춘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목에서 유권자의 무절제한 주장을 들어주는 것이
정치가 아니다.

흥미본위의 보도나 소설을 쓰고 작문을 하는 것이 언론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언론종사자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다고 판단된다.

훌륭한 지도자는 타협하는 정치가가 아니며 신념있는 정치가이며, 언론은
자유를 만끽하기 전에 사회적 책임을 최소한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