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을 하건말건 사회가 아랑곳하지 않을 업종은 없겠지만 시민의 발인
도시버스의 경우처럼 민감한 사례도 드물 것이다.

임금협상이 막바지였던 전국 6대도시 버스가운데 26일 새벽 시한을
넘겨 결국 파업에 들어간 서울 인천 대전의 경우, 그렇잖아도 사면초가로
옥죄는 불안속에 시민은 심신의 충격을 견뎌야 했다.

이번 버스 파업이 아닌밤중 홍두깨격으로 유난히 국민을 당혹시킨 까닭은
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치지 않은 위법성 한가지 때문이 아니다.

더 와닿는 것은 도시버스 경영이 어느새 임금협상에 요금인상을
담보하고 파업을 감행해야 하는 지경에 왔는지에 대한 일반의 이해부족이다.

위법성 문제를 보자.

어렵사리 재개정된 쟁의조정법은 파업에 대해 노동위 조정후 15일의
냉각기간을 두는 조정전치로 전환했으나 법통과후 한달이 경과하도록
새 위원회구성이 되지 않은 상태다.

위원회 부재시엔 위원회사무국에 조정신청을 내야 한다는 해석의 일면적
타당성에도 불구, 새 내각의 준비태만은 간과될 수 없다.

법개정후의 공백에 비춰 해석상 혼선은 있을수 있다 치자.

그러나 노동위구성을 기다릴수 없을 만큼 6대도시의 버스 경영사정이 과연
절박한지, 이토록 문제가 불거지도록 각 시당국은 무엇을 해왔는지, 이런
허점을 노-사-정 어떤 당사자건 이용하려 벼른 것은 아닌지에 대해
어디에도 납득할 해명이 없다.

국민의 뇌리에는 아직 시내버스 부정사건이 생생히 남아 있다.

적자핑계로 통행료를 올려준 이면에 경영주들이 공무원에게 뇌물을
쓰며 이익금을 빼돌리다 작년에 폭로된 서울시의 만성비리가 그것이다.

그때 국민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삭였던가.

오른 요금을 되내리거나,적어도 다시 올리는 일은 못하겠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사이 요금을 인상하지 않고는 종업원의 품삯을 올리지 못할
지경이 됐단 말인가.

각 시당국이 이번에 요금인상의 타당성을 인정한 사실부터가 믿기지
않는다.

이 시점서 요금인상 타당성이 분명 있다면 버스회사의 이익금누출로
안해도 될 요금인상을 허용했다는 사정당국의 수사발표는 허위였단 말인가.

물가상승에 온 탓을 돌린다면 어디 버스요금 뿐이겠는가.

진부한 얘기지만 지금 나라가 처한 형편은 말이 아니다.

이런 속에 어느 업계, 어느 직종인들 자신의 문제해결에 막무가내
사회희생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열악한 근로조건에 비한 버스기사의 저임금을 사회, 특히 승객들이
모르는바 아니다.

사실 지난해 서울시 사건때도 혼동해선 안될 업자의 이익금누출과 기사의
저임금을 혼동해 간과해버린 것은 잘못이다.

불행중 다행이었다고 할까.

이들 파업도시버스의 노사간 임금협상이 26일 모두 타결되어 파업소동은
하루로 끝났다.

하지만 뒷맛은 개운치가 않다.

그리고 이제는 또 버스요금을 어찌 할지 두고 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