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심각한 경제사정을 반영하듯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계속 뒷걸음
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지난 24일 잠정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95년 24위에서 작년에는 27위로 떨어진데
이어 올해에는 다시 31위로 주저앉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홍콩, 말레이시아 대만은 물론 심지어 중국이나
태국에도 뒤진다는 평가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조사방법론에서 볼때 세계각국의 2천5백여명에게 설문조사를 통해 얻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주관적인 편차가 상당히 클 수 있으며 국가경쟁력이라는
개념자체도 아직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해마다 되풀이 되는 조사결과로 얻어진 추세는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비록 주관적이나마 설문조사대상자들의 판단도
현실세계에서는 적지않은 영향력을 미치게 마련이다.

따라서 무엇이 우리의 국가경쟁력을 해치는 주요요인이며 왜 이같은
문제점들이 개선되지 못하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먼저 국가경쟁력 취약부문은 금융,국제화수준,정부,사회간접자본으로
지난 2년동안 거의 변동이 없다.

특히 한보부도사태이후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금융부문은
조사대상 46개국중 43위로 바닥을 기고있다.

오랜 세월 정치권력과 관료집단의 손에 휘둘려온 관치금융풍토가 쉽게
개선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한보파문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비리와
무책임은 지난 몇해동안 외쳐온 금융개혁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지경이다.

46개국중 40위를 기록한 국제화수준도 바닥이기는 마찬가지다.

현정부가 세계화를 추진한다며 요란을 떨었지만 국제화 수준이 나아지기는
커녕 2년전의 34위보다 오히려 더 떨어졌다.

엉뚱하게 영어조기교육붐만 일으켰지 기업의 국내외진출이나 외국인투자
보호 등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전혀없기 때문이다.

똑같이 36위에 오른 정부부문과 사회 간접자본도 개선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집권이후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추진했던 규제완화의 실패는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규제완화업무를 공정거래위원회로 일원화하고 규제일몰제도의
도입을 검토하는 등 안간 힘을 쓰고 있으나 행정단계및 기구축소,
공무원감원, 규제업무의 민간이양 등 굵직한 대목은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간접자본확충도 당장 이룰 것처럼 요란만 떨었지 민자참여유도
등에 전혀 진전이 없으며 재정긴축을 명분으로 오히려 사업연기를 추진하고
있다.

결국 문민정부의 개혁은 겉으로만 요란했지 내실이 없었다는 결론이다.

이는 앞으로의 정책과제를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한 개혁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와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 일본도 갖은 논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처음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또한 최근 아시아경제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것도 순위하락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국가경쟁력이란 변하기 마련이며 우리는 아직도 강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고질적인 경쟁력 약화요인이 개선되지 못한 점은 어떻게든 시정돼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