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수한 학생은 대기업에 안간다. 졸업후 창업을 한다. 더 우수한
학생은 졸업을 하기도 전에 벤처기업에 뛰어든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교무담당교수가 요즘 인재들이 안 들어온다고 푸념하는
한 기업인사 담당임원에게 했다는 이야기다.

요즘 미국의 벤처기업 열풍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이같은 창업바람은 국내라고 예외가 아니다.

내로라하는 젊은이들이 "제2의 빌 게이츠 신화"를 꿈꾸며 창업전선으로
돌진하고 있다.

김도완씨(29).

뛰어난 두뇌들이 모였다는 한국과학기술원의 학생창업연구회인 KBC
(카이스트 비즈니스 센터) 회장이다.

"이젠 벤처기업의 시대가 열립니다. 미국경제가 다시 살아난 것도 이같은
벤처기업들의 활약 때문이죠"

그는 벤처기업에 대해 굳건한 신념을 갖고 있다.

사회분위기에 휩쓸려 일단 한번 해보자는 식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기업을 트럭이라고 비유한다면 벤처기업은 오토바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트럭들이 도로가 막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주춤할 때 오토바이를 이용
하면 쉽게 빠져나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죠"

그가 내세우는 벤처기업 예찬론이다.

세계가 무한 경쟁시대로 돌입하면서 정신없이 변하고 있는 지금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벤처기업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이처럼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생 시절부터다.

졸업후 번듯한 회사를 차리겠다는 마음을 일찍부터 먹었지만 막상 아는게
없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주변 친구들을 모아 창업연구 동아리를 만든게 지난해
5월.

하지만 학생이라는 신분때문에 벤처모임을 끌고가기가 간단치 않았다.

"학생신분에 무슨 창업이냐"는 핀잔을 받은 것.

그러나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3일만에 40여명의 회원이 모였다.

터보테크 장흥순사장이나 메디슨 이민화회장등 카이스트 출신으로 성공한
선배 벤처기업가들이 많은 탓인지 학생들 사이에 관심도 높았다.

잘 아시는 교수분 덕에 쉽게 사무실도 얻었다.

"가진 건 돈밖에 없다"며 활동비를 지원하는 독지가도 나타났다.

그는 요즘 1백70여명 회원을 이끌고 "창업예비자 육성"에 나서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창업세미나및 사업 아이디어 경진대회도 개최
하면서 잠재적 창업자를 키우고 있다.

창업준비자에게는 각종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를 모아주는 일도 한다.

KBC는 이달말까지는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재출발해 단순한 동아리형식을
탈피할 계획이다.

본격적인 사업에 나설 채비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벤처기업을 설립하는 것은 말 그대로 모험의 시작일 뿐이다.

KBC활동을 하면서 그는 정부의 기업규제가 지나치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한다.

회사설립절차도 까다롭고 갖가지 중복규제도 많다.

벤처캐피털(창업투자회사)도 있지만 돈 끌어모으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외국같이 개인투자자들로 구성된 "에인젤클럽"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창업자금을 마련하는게 만만치 않다.

한마디로 정부나 사회 전반적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이 뒤떨어진다는게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벤처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정책이 별다른게 있는게 아닙니다. 규제를
풀면 저절로 될 것니다"

그가 던진 정부에 대한 따끔한 충고다.

조건이야 이처럼 열악하지만 그래도 미래는 항상 도전하는 자들의 것.

"빌 게이츠가 또 한번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켰다면 우리는 코리안
드림을 보여주겠습니다"

29살 젊은이가 이 사회에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