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의 인기는 요즘 바닥이다.

오죽하면 일부 대학생들에겐 가장 복제하기 싫은 인물중 한명으로 꼽혔을
정도다.

집권 초기의 높았던 인기를 생각하면 그야먈로 "권력무상 인기무상"을
실감케 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YS 정부의 잘못을 일일이 열거, 질타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수많은 언론에서, 또 민심을 통해 이른바 문민정부의 실책은
성토되고 심판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다 셀 때는 꼼짝못하다 힘이 빠지니 마구 난도질 해대는 우리언론의
"하이에나 근성"을 다시 드러내기도 민망해서 이다.

어쨌던 사람들은 YS정부의 실패원인으로 여러가지를 꼽는다.

대통령의 오만과 무지, 지나친 인기위주의 정책, 잘못된 인사, 측근들의
비리 등등-.

모두 옳은 지적이다.

공감하고 찬동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문민정부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또하나 보태고
싶은게 있다.

바로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사고다.

우리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개혁은 내가 아니라 남들이 해야하는
것"이란 극단적인 이기적 사고가 그것이다.

기자는 현정부 출범초기 2년간 청와대를 출입한 경험이 있다.

일선기자생활의 전부를 경제관련 출입처만 다닌 정치문외한으로선 일종의
외도였다.

그러나 훈수꾼이 장기판의 흐름을 더 빨리 읽는 이치 같은 것이었을까.

어설픈 정치기자의 눈엔 새정부 출범초기부터 YS개혁의 실패를 예고하는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읽혀졌다.

그리고 그 예감은 끝내 더 "처절한 실패"로 지금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YS가 취임후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돈 안받는 대통령"이 되겠음을
선언했을 때 국민들은 환호했다.

언론은 역사적인 개혁의 출발로 묘사했다.

지지율은 90%를 넘었고 가신들은 물론 청와대 직원들도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 괜히 우쭐댔다.

출입기자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가 실망으로 또 냉소로 빠뀌는데는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청와대 기자실 분위기부터가 그랬다.

과거정권때에 비해 일만 많아지고 대접(?)은 형편없어진 출입처에 대해
기자들의 불평은 곧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청와대기자실의 표면적 정서는 반YS로 흘렀다.

청와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시말해 비서실 직원들의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나 청와대 근무에 대한
만족도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대통령의 격려금이나 하사금은 없어지고 일만 더 많아진 청와대근무.

그들은 흔히 "원소속 근무처로 되돌아 가고 싶다"며 자긍심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하물며 청와대 경호실까지도 그랬다.

친하게 지낸 육사출신의 한 경호실 직원은 YS정부 출범후 얼마안되 사표를
던졌다.

"과거 같으면 경호업무를 나가면 관련 기관이나 기업들의 지원이 괜찮았다.

그러나지 금은 일만 많아졌다.

풀이 죽은 후배들을 격려하려니 고달프기 짝이 없다"

그가 들려준 사직의 변이었다.

청와대 인근 중국식당 주인 아주머니의 변신은 더 리얼하다.

우리가 처음 그 중국집에 들렀을 때 이 아주머니는 돈 안받기로한 YS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러나 몇달후 그녀는 달라져 있었다.

"YS때문에 장사 못해먹겠다"는 하소연을 펑펑 해댔다.

기자들이나 비서관들이 과거와는 달리 요리상은 시키지 않고 짜장면만
달랑 먹고가니 도대체 매상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기다 하나 더 보태면 YS정부 출범초기의 청와대 살림살이는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과거정권시절, 청와대 예산은 사실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필요한 돈은 정치자금으로 거둬 쓰면 됐다.

서슬퍼런 YS정부 초기만해도 그럴수가 없었다.

교수출신의 한 융통성없는 문민1기 수석비서관은 쥐꼬리만한 판공비가
모자라 자신의 퇴직금까지 보태 매일 한두건씩있는 저녁모임의 경비로
충당한다고 했다.

그래도 기자들에겐 밥도 자주 안사는 "짠 사람"으로 미움을 받았다.

YS정부 출범후 불과 몇개월만에 정치 문외한의 눈에 비친 이런 기류들은
결국 "돈 안주고 안받는 정치"의 실패를 예감케 했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돈안쓰는 리더십의 상실현상"을
막기위해서라도 홍인길 총무수석은 검은 돈과 유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를 악용한 장학로 비서관의 사기극도 가능했으며 한보비리도 기실
이때부터 싹이 텄을 터였다.

그렇다고 이런 사례들의 열거가 실패한 정권에 면죄부를 주자는 뜻은
아니다.

"대책없는 이상"만을 내세운 것부터가 원초적 잘못일 수도 있다.

다만 YS정권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면 그 일단의 책임이 우리에겐 전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얘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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