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 수원대 교수.경제학 >

제도의 변화는 흔히 정책적으로 의도된 방향과는 달리 경제행위자들의
행태를 변화시킴으로써 경제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

금융실명제의 도입이 지난 3년여에 걸쳐 우리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음에 분명하고, 마찬가지로 실명제의 보완도 또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제도의 변화가 가져올 결과를 사전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증이 어려운 문제일수록 제도의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개념과 논리가 분명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새로 구성된 정부의 경제팀이 제기하고 있는 금융실명제의
보완론은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첫째, 금융실명제의 보완론은 상당부분 지극히 불명확한 개념들과
검증되지 않은 체감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금융실명제의 부작용으로 지적되는 지하경제와 지하자금의 팽창문제는
개념적으로 지극히 모호하고 검증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상들인
반면에, 심정적으로는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금융실명제
보완론의 근거로 삼기에는 더욱 높은 정책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보완론이 객관적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금융저축의 저하,
과소비 현상 등 금융실명제의 영향이라고 지적되는 현상들이 현재의 활력을
상실한 경제상태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둘째, 금융실명제를 회피하려는 막대한 자하자금을 제도금융권으로
흡수하여 선업자금화하기 위하여 실명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지하자금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지하자금이란 현금이나 수료의 형태로 은닉되어 있거나, 제도금융의 금융
중개기능 밖에서 이자소득에 대한 과세를 회피하여 거래되는 사금융자금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은닉된 현금을 제외하고는 지하자금도 제도금융권의 금융자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언론들은 지하경제규모가 31조로 추정된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하고 있으나,
이 수치로부터 실명제를 회피하여 은닉된 자금규모를 추정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한편 금융실명제는 현정부의 경제개혁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혁의 상징성을 손상할 만한 어떠한 보완조치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정치의 논리로 경제를 운영하는 오류를 가지고 있다.

또한 금융실명제가 현재의 경제상황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민감한 제도
개혁의 경제형태에 미치는 외부효과를 간과한 것이다.

금융실명제 보완론의 초점은 다음 세가지에 있다.

첫째는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를 위한 무기명채권이나 자금출처조사면제
채권의 발행 문제이다.

채권발행의 사회적 비용은 부정한 자금에 도피처를 제공하거나 면죄부를
줌으로써 실명제의 본질을 훼손한다는 점이며, 사회적 편익은 지하자금을
산업자금화하는 효과이다.

만약 막대한 현금이 은닉되었다면, 그만큼 현금수요가 증가하여야 했으나
현금통화비율은 94년2월이후 계속 낮아져 현재는 실명제 실시직전보다도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권발행을 통해 흡수될 수 있는 자금은 주로 현재 불편하게
합의차명되어 있는 자금의 상당부분과 은닉된 현금으로 예상되며, 이미
합의차명된 자금의 채권으로의 이전은 산업자금화의 효과가 없다.

따라서 채권발행을 통한 산업자금화의 효과는 실명제 보완론이 제시하는
효과보다 현저하게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자금출처조사 축소문제이다.

현재 돈의 과거에 대한 소명조사를 마친 자금은 차.가명계좌 실명전환중
20억원이상이며, 나머지 실명자금들은 자금출처조사가 불확정한 상태에 있다.

자금출처조사문제가 과소비나 저축저하에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큰 이유는 신고소득과 실제소득의 차이를
금융자산으로 저축할 경우 자금출처조사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소비로 자금을 소진해 버릴 유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의 자금에 대해서는 일정시점이전에 실명확인된 경우 일정규모
이하 또는 증자 및 기업창업자금 등의 특정용도에 사용되는 자금에 대해서는
자금출처조사를 면제하고, 향후로도 조사대상자금의 범위를 축소함으로써
금융자산 보유로 인한 자금출처조사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금융자산소득 종합과세 완화문제이다.

종합과세를 회피하기 위해 금융자산 보유를 기피하고 소비를 선택하는
유인을 처하시키기 위한 세율인하와 분리과세 금융상품의 확대는 소수의
이익을 위해 종합과세의 취지를 훼손하는 문제점이 있다.

금융실명제가 선진경제사회를 실현하는 사회제도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긴급명령의 불안정한 틀을 벗고 일반법으로 고쳐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일반법으로 제도화한다면, 투명하고 확고한 제도의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금융실명제의 보완을 경기대응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

무엇인가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조치를 통해 경제마인드를
자극함으로써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실명제의 정착이라는 과제와 당면한 경제활성화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하는 동시에 지도변경의 정책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완론의 근거가 불명확한 계연성과 선험적 단정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며, 보완책의 범위를 당초부터 제도적으로 불명확했던 자금출처조사의
범위를 축소하고 구체화함으로써 금융저축보유의 위험을 제거하는 제한된
범위내에서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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