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외국정부 또는 이익단체들이 무리사회의 과소비억제운동을
수입규제장벽의 하나로 간주하고 통상마찰가능성까지 들먹인 사실을
놓고 각계의 반응이 엇갓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과거 우리의 경제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있었던 소비절약운동에
대해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외국측이 과잉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경젝모가 커진 증거라고 별로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난해 경상수지적자가 사상최대인 2백37억달러에
달할 정도로 경제형편이 악화됨에 따라 생긴 자연발생적인 자구운동에
대해 수입규제 운운하며 시비를 거는 것은 지나친 내정간섭이라고
발끈하기도 한다.

우리경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수출주도의 경제성장을 계속하면서
한편으로는 수입 개방폭을 계속 확대시켜갈 것이 분명하다.

이 과정에서 시비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관계당국은 다음 몇가지 점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먼저 수많은 규제들을 대폭 철폐하고 시장자율을 앞당겨야
한다.

한국에 대해 조금 안다는 외국의 기업이나 언론은 하나같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한국정부의 입김이 결정적이라고 색안경을 쓰고
본다.

따라서 먼저 한국정부를 공략하면 문제는 자기네 뜻대로 풀린다는
그릇된 시각을 믿고 있다.

이번 과소비억제운동에 대한 외국의 시비도 같은 맥락이며 일이
이렇게 된데에는 우리정부의 행정만능주의 탓도 크다고 봐야한다.

다음으로 지적할 점은 정책의 일관성 또는 형평성에 문제가 없지
않다는 사실이다.

대중주인 맥주세율이 1백30%로 왜 고급술인 위스키의 1백%보다 낮아야
하느냐는 해묵은 불평에 세수확보를 핑계대고 소주세율과 위스키세율의
격차축소는 국국제문제고 맥주세율인하는 국내문제라는 정책당국의 안이한
반응이 좋은 예이다.

통상압력으로 위스키세율이 2백%에서 1백%로 낮아진뒤 수입위스키의
소비가 급증해 국제수지적자가 확대됐을 뿐만아니라 국민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가격이 시장수급을 조절하는 자본주의경제에서 세율은 세수확보
뿐만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예로 북유럽각국은 국민건강과 환경보호 그리고 에너지절약을
위해 술-담배 및 자동차에 중과세하지만 통상마찰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우리도 맥주세율을 낮추고 소주와 위스키세율을 높여 형평성시비 및 세
결함을 방지하면서 국민건강보호를 꾀할 수는 없는 일일까.

끝으로 고도성장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수요가
폭발한 것은 이해할수 있지만 이점에서도 정부책임이 적지않다고 본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자 당장 선진국이 된것처럼 각종 국제행사를
무분별하게 유치하고 일반국민의 소비심리를 부추기는데 앞장선 것은
다름아닌 정부자신이었다.

확실한 비전과 향후일정도 없이 막대한 외화를 들여 통신위성을 쏘아
올려놓고 놀리고 있으면서 국제수지적자가 늘어나지 않을수 있겠는가.

일반국민과 기업도 근검절약하며 청부를 일구는 자본주의정신을
갖춰야겠지만 우리사회의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인 정책당국자들부터
하루빨리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