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출귀몰하는 녀석을 어떻게 우리 미아의 호기심에서 쫓아내고 결코
두번다시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들까?

그 궁리에 머리가 터질것 같다.

"우리 압구정동이 얼마나 좁우?

그런데 그 부잣집 아들을 다시는 압구정동에서 볼 수가 없는 거유.

나는 그 오빠의 꿈까지 가끔 꾸었는데 이런 오빠는 희귀동물을 발견하고
쫓는 포수들이 많아서 꼭꼭 숨어서 다니는 것인지, 우리 학원의 모든
여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고는 그대로 오리무중으로 사라져버렸는데,
내가 용케도 바로 요 앞에 있는 보물섬 당구장에서 오늘 나오는 것을
잡았다 이 말이우"

공박사는 딸의 근력 좋은 입담에 질리면서 자기도 여고시절에는 그렇게
힘차고 줄기차게 지껄일 수 있었던가 추억해 본다.

그러나 이것은 동물성을 많이 먹은 신세대 아이들의 특징은 아닐까?

동물적으로 강한 호기심과 넘쳐나는 영양상태가 이루어놓은 입담일까?
공박사는 자기 딸의 수다와 강렬한 호기심에 완전히 손을 들고 만다.

그 오빠는 틀림없이 지영웅이다.

지영웅은 이 근처의 당구장에서 남아도는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리고 무지무지 실력이 있는 허슬러라고 뽐낸 적이 있다.

그 당구장의 이름이 보물섬이라고 한 적은 없는것 같지만 아무튼
이 놀라운 미남 지글러의 존재는 이제 단순한 과대망상증 환자, 쇼핑중독증
환자가 아니라 가장 무시무시한 나쁜 놈, 나의 딸을 망칠 수도 있는
원수같은 놈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스러운 존재로 부상했다.

"그 오빠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던?"

"학원에는 차를 안 타고와.

바로 이 근처 어디 걸어올 수 있는 거리에 사는것 같았어"

모든 여자들을 현혹시키는 이 놈을 어떻게 처리한다.

그녀는 사뭇 살인마라도 발견한듯 가슴이 쿵쿵 뛰면서 공포에 휘말린다.

"엄마, 왜 그래요?

혈압 오르는것 아니유?

엄마는 의사지만 의사들도 자기병은 못 고치더라.

의사는 안 죽어야 되는데 그들도 결국은 죽지않아?

그러나 우리 엄마는 죽으면 안돼.우리는 아직 어린 나무인걸 큰 나무로
자라려면 우리는 태양이 필요해요.

엄마는 우리의 태양인걸"

그래 나는 저 아이들의 태양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미아의 고백을 간단히 들어넘겨서는 안 된다.

그는 순간 지영웅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싶다.

레이저 한방으로 날리는 법은 없을까?

그는 이제 그녀의 환자가 아니라 압구정동의 쓰레기요, 바이러스다.

감옥에라도 처넣고 싶다.

어떻게 하면 미아에게서 그놈의 환상을 깨끗이 척결해 줄 수 있을까?

대변이 가득 든 양변기의 스위치 하나로 깨끗이 모든 오물이 씻기듯이
말이다.

그녀는 자기의 두뇌에다 스위치를 힘차게 누른다.

그렇다.

다음에 지영웅이 나타나면 사진을 한장 촬영해서 미아에게 들이대자.

그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