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원(KAIST) 분자유전학 실험실에는 10명의 괴짜가 있다.

정재훈 지도교수(41)를 비롯 석박사과정에 있는 9명의 학생들이 그 주인공
이다.

이들은 밤낮없이 유전자 연구에 몰두하다가 홀연히 배낭을 둘러메고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심심한데 우리 속리산에나 다녀올까"

정교수의 바람잡이에 제자들은 항상 기분이 좋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뜻에서 학생들은 정교수를 "개구리"로 부른다.

권위적인 모습이 없고 항상 대하기가 편해 "엉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구원들의 연구분야는 인체의 신비를 캐내는 것.

23쌍의 염색체 집합과 아직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수억개의 DNA를 연구해
각각의 특징과 역할을 밝혀내는 것이 과제다.

정교수는 "쉽게 말해 자식이 부모와 다른 모습을 보일때 왜 그런지를
분자수준에서 밝혀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연구원들의 취미생활도 가지각색.

박사 5년차인 이영재씨(28)는 만화와 컴퓨터게임의 마니아다.

기술원 주위에 있는 만화방 주인들은 모두 이씨를 알 정도이다.

같은 5년차인 장재선씨(30)는 태껸 3단의 스포츠맨.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내셔널한 태껸의 보급에 힘쓰고 있다.

한윤수씨(28)는 컴퓨터 전문.

염색체 연구에 필요한 컴퓨터를 배우는 것도 즐겁지만 때로 인터넷 채팅을
통해 해외친구를 사귀는 것도 재미라고 소개한다.

당구 3백의 고수 양인철씨(28)도 컴퓨터게임의 강자로 통한다.

모유의 락토세린 성분과 같은 종류의 젖소우유를 만든 프로젝트에 참가,
주목받는 박인영씨(30)는 두주불사형.

그는 일주일 내내 술을 먹는다.

무엇이든 시작한 일에 몰두하는 전형적인 수재형이다.

1백85cm의 장신센터 박창원씨(27)는 연구실 농구팀을 기술원내 최강으로
키운 장본인.

그러나 매년 강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우승은 한번도 못해봤다.

연구원들은 모두 총각이다.

"연구와 취미생활에 빠져 아직 여자친구를 만날 여유가 없었다"고 핑계를
댄다.

그러나 요즘에는 정말 딴데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복제 논쟁"이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전자 연구를 방해하려는 쪽에서 언론을 이용해 압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발견했을때 기독교인들이 반발했듯이 기존 사상을
고수하려는 세력은 항상 새로운 지식에 위험을 느끼게 마련이죠.

그러나 새로운 것을 찾는 연구자들은 시대에 필요한 패러다임을 만들게
되죠"

유전자 연구로 젊음을 불사르고 있는 연구원들의 향학열로 분자유전학연구실
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박수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