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마야말로 병원과 헬스클럽으로 빙글빙글 돌면서 세상에 내가
관심갖는 남자는 모두 악당이고 정신병적 소인이 있어 보이고, 나를 따라
다니는 귀동들은 또 모두 과대망상과 사랑중독증 환자이고, 그렇게만
해석하니까 정말 답답해서 동생과 내가 어머니를 깨끗하게 프레시하게
머리의 강박관념과 우울의 때를 좀 벗겨주고 싶어서 오늘을 특별히
선택해서 데이트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데이트를 해주신다구? 호호호, 내 별소리 다 듣겠네, 건방지게시리.
그래 재킷은 안 고를 거냐? 그것부터 하자. 우리도 뭐 군중속에 끼여들어
보자꾸나"

"좋습니다, 모친. 그런데 제가 사려는 재킷은 이미 동이 났네요.

세일까지 가지 않을 거라는 우리들 추측이 맞았구먼요.

아아아아, 버스는 지나갔도다. 분한지고, 사람들의 홍수여!"

"얘야, 그 디자인이 그렇게 입구 싶으면 물어보자. 여분이 있는가 하고"

"그러지요, 뭐. 엄마는 여기 서 계세요. 내가 가서 물어볼게요"

미아는 목을 길게 빼고 가게안을 기웃거리다가 드디어 혼잡속에서 혼이
다 빠진 아가씨를 붙들고 말을 건다.

그리고 이내 가위표를 하면서 공박사에게로 온다.

"내 추리대로예요. 불쌍해라. 그 아가씨는 오늘 너무 인파에 시달려서
목이 다 쉬었어. 말을 더 이상 시키는 것도 죄가 될것 같아서 두말없이
나왔어. 안 입고 말지. 나는 누구를 괴롭히는데는 소질이 없나봐"

미아와 그녀는 갈곳을 잃는다.

파도와 같은 인간들속의 고독이라고 할까? "엄마, 불만이 계속 쌓일것
같으니까 차라리 먹는 곳으로 가요"

앞장서서 걸어가는 미아의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공박사는 딸아이의 손을 꼭 거머쥐면서 인파에 아이를 잃을것 같아 손에
힘을 꼬옥꼭 준다.

그녀는 사회병속에서 살고 있어서 언제나 자기 아이들이 걱정이다.

"엄마, 우선 밖으로 나가요. 나가서 국수든 뭐든 우선 요기를 해"

그 아이는 언제나 앞장을 서야 직성이 풀린다.

백화점의 풍속을 너무 잘 아는 것을 보니 심심할 때는 이곳에 와서
소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백화점 밖으로 나오자 우선 살것 같다.

근처 음식점에 앉자 공박사는, "너 백화점에 일주일에 몇번이나 오니?"

"너댓번 오나봐. 그래도 공기가 맑고, 구경하는것 돈 안 받고, 우선
따뜻하게 난방이 되어 있고, 지하에는 스낵도 많고, 옷구경도 눈을
세련시키는데는 아주 그만이거든요.

나는 상업미술을 할거니까,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은 여기가 산공부가 돼"

"너, 본격 미술이 아니구 끝까지 패션쪽으로 가려는 거야?"

공박사가 놀라서 묻는다.

"백화점만한 실습공간도 도심에서는 찾기가 힘들거든. 그러니까 이
속에서 나는 나의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거유. 아이쇼핑만 하면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