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여-야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새 노동법이 빠르면 이번
주내로 법처리절차를 마무리짓고 공포와 동시에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후속절차도 서둘러 이달안에 시행령을 공포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의 이같은 신속한 행보는 노동법의 공백상태를 하루빨리 종식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에 비추어 매우 바람직한 자세라고 하겠다.

그러나 당장 합리적인 시행령을 제정하는 일부터 쉽지 않을 것같아
걱정이다.

새 노동법은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시간제 노조전임자임금문제 등 주요
쟁점사안에서 애매모호한 구석이 많아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실제 법운용방향이 크게 달라지게 돼있다.

벌써부터 전경련 경총 등 재계가 잇단 회합을 갖고 이같은 하위법령의
제정방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모법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최대한 반영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균형잡힌 시행령을 마련해주길 당부한다.

시행령을 둘러싼 갈등도 갈등이지만 이달말부터 본격화되는 개별사업장의
임단협상에서 노동법 적용문제를 놓고 노사간 마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번 임단협상에서 새 노동법의 적용을 거부키로
하고 곧 단위노조에 이같은 지침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노동계의 이같은 "불복종운동"을 보면서 우리는 복수노지금지 등 이른바
"3금"의 철폐가 이념적투쟁의 교두보로 이용된다든지 세확장을 위한
선명성경쟁이나 노-노 갈등의 증폭요인이 돼선 안된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자 한다.

특히 복수노조허용에 따라 합법단체로 인정받게된 민주노총은 정치투쟁
아닌 공익제고에 힘써야 할 책무를 소홀히 해선 안된다.

노조없는 일부 대기업을 세확장을 위한 투쟁장소로 삼을 것이라는 얘기가
뜬 소문이길 바란다.

새 노동법이 본래의 법개정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흠이 있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아 21세기 선진노사관계구축을 위한 기본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높이 평가돼 마땅하다.

사용자든 근로자든 나름대로 불만과 아쉬움이 있겠지만 이쯤에서 소모적인
논쟁을 끝냄이 옳다.

지난 1년간 노동법개정을 둘러싼 파란을 겪으면서 우리는 집단이기주의와
정책혼선, 정치권의 저질행태 등이 뒤범벅이 된 엄청난 경제적손실과
사회비용을 치려야 했다.

우리 경제는 지금 노사갈등이 아니더라도 성장잠재력과 산업경쟁력은
쇠락하고 실업은 늘어나는 "마(마)의 고비"에 처해있다.

노사가 협력해 경제살리기에 나선다 해도 경제회생이 가능할지의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새 노동법이 갖는 결함은 노사가 참여와 협력의 정신으로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관계구축에 나설때 얼마든지 극복될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경총이 제의한 노사공동의 "노사관행 진단위원회" 구성은
잘못된 노사관행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야말로 노-사-정 모두는 심기일전해 자길파멸적인 대립구도를
청산하고 경제살리기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