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정권의 마지막 1년간 경제정책을 이끌어 갈 새경제팀은 여건이
무척 좋지않은 시점에서 어려운 경제사정을 물려받게 되었을 뿐아니라
1년미만이라는 시한부 재임기간에다 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까지
관리해야 하는 등 그야말로 많은 난제를 안고있다.

이같은 점을 감안,많은 사람들은 기대를 걸지 않을 터이니 더이상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것만 막아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치고 우리 경제가 빠른 시일내에 회복세를 보여주기를
갈망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문제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과거의 위기극복사례를 토대로 난국을
헤쳐나갈 전환위복의 계기로 삼도록 어느 정도는 기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안정속에서 일관성 있게 제도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경제구조를 조정해 나가도록 당부한다.

이와같은 중장기적 정책방향하에서 금융과 재정의 긴축운용이 주축이
되는 총수요관리, 금융개혁 추진과 근검.절약정신 고취등이 단기정책기조로
제시되고 있다.

요컨대 한국경제의 회복여부는 정치적 변수가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시장기능의 창달을 통한 국민경제의 체질개선을 도모하는 일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이는 바로 총체적인 한국병의 치유와 결부된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한국병 치료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어야한다.

국민과 국가경제라는 대의를 위해 솔선하여 정부를 개혁하고 과감히
기득권 계층을 축소시키는 특단조치를 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천민화하고 있는 한국적 자본주의를 중상주의적
배금사상으로부터 탈피시키려는 의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단기경제운용에 있어 독일의 경험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이를테면 현자클럽을 구성하여 경제정책에 대한 자문을 구한다든가 주요
경제연구소 책임자들의 정기.비정기적 회동을 통하여 거시경제운용의
기본틀에 대한 합의를 도출(concerted action)하여 효율있는 정책추진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과 같은 한국병이 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제대로 진단하게 되면
그 처방이 잘 드러나게 돼있다.

지난 30여년간 정부주도에 의한 경제성장중시전략은 지표상으로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천민자본주의적 사고와 정책운용기조는 그와같은 성공 못지않게
한국경제에 부담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로 말미암아 한국경제는 구조적 취약성을
더해가고 있으며 불공정한 제도 운영과 관행의 답습, 부패와 낭비의
증가를 초래함으로써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고 관료사회, 일부
대기업, 그리고 정부주변단체등으로 연결되는 기득권계층을 키워주게
되었다.

이와같은 불공정관행속에서 사회적 비용을 부추기는 기득권세력의
불로소득추구는 당연히 국민들에게 근로의욕 감퇴, 순수한 기업의지
상실을 안겨 주었고 황금만능과 인명경시사조를 풍미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고비용과 인플레체질, 그리고 비효율로 점철된 산업구조는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게 하고 있으며 급기야 국내외 시장에서 국산품이
코너로 몰리고 있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해외에서 팔릴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일본처럼 제품생산에 "혼"을 불어넣고 있는 것도 아니요, 고임금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재빨리 생산기지를 개도국으로 이전하고 있지도 못하다.

지금까지는 일제를 모방하여 싼값으로 그럭저럭 팔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것도 통하지 않게 됐다.

고비용 비능률 구조에다 엔저까지 겹치니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은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는 중상주의적 사고를 배경으로 정부주도에 의한 경제운용이
몰고온 대실패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한국병을 치유시키려는 환골탈태하는 노력없이는 우리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불신감과 무력감을 자신감과 의욕으로 승화시키는 플러스
발상이 나올 수 없다.

한가지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경부고속철도나 인천국제공항건설등
대형국책사업에 임하는 관료들의 태도가 과연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이들 사업추진 과정에서 외국기술자를 비싼 값으로 초빙해놓고 제대로
역할분담을 시키지도 못하고 있을뿐아니라 외국인들과 회의를 할때도
통역없이 한국어로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민간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많은 돈을 들여 외국기술자를 초빙해 놓고 그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외화낭비의 단적인 표본이 아닌가.

소위 텃세에다 언어장벽까지 가중되어 기술전수나 도입은 커녕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많다.

기업주가 그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이대로는 절대로 안된다.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의 수습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국민여론의
힘을 실감한 바 있다.

정부는 발상의 일대전환을 통하여 한국병치유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럴경우 신뢰감 회복은 시간문제일 것이며 민간기업 노동계 학생등
국민 전반은 선량한 추종자가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