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세종대 교수 / 경제학>


작년 하반기 이후 우리경제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있다.

올해 들어서는 노동법개정 파문과 한보사태로 인해 경제가 더욱 어렵게
꼬여가고 있다.

97년 처음 두달간 55억달러의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우리경제가
금년도에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지 않고 5%대의 성장이나마
할수 있을지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올해 우리경제는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답답한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교란 요인이 여기저기 지뢰밭처럼 널려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긴장고조라는 요인은 제쳐 두더라도 대선을 앞두고 노사갈등의
심화, 집단이기주의 발호, 경제논리 후퇴 등이 97년내내 우리경제를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비용-저효율로 요약되는 경제체질이 짧은 기간에 개선될수는
없다.

우리의 경제규모및 산업수준으로 볼때 경제의 어려움을 단번에 해소할수
있는 뚜렷한 단기적 대책은 없다고 할수있다.

현상황을 속시원히 타개할수 있는 기발한 정책수단은 있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이를 무리하게 시도해서도 안된다.

이렇게 어려울 때는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또한 장기적 안목을 갖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개혁을 포함한 과감한 규제개혁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우리경제 구석구석에서 경쟁촉진적 시장기능이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과 더 큰 고통을
각오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경제의 최대 현안인 고비용-저효율 체제의 구조적개선을
위한 기반조성이 시작될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최대관건은 이해와 협조에 바탕을 둔 노사관계안정이라고
할수 있다.

노동법개정의 기본방향은 자율적 노사관계의 기반조성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여야 한다.

OECD가입에 부응하여 우리나라가 선진국 클럽의 일원으로서 당당하게
활동하는데 장애가 되는 낡고 불합리한 제도를 차제에 과감히 벗어버려야
한다.

선진국수준으로 우리의 제도와 관행을 조속히 정립해야한다.

복수노조허용, 노동조합의 정치활동허용, 제3자 개입금지조항 삭제등
집단적 노사관계와 관련된 사항들은 노동기본권을 신장시킴으로써 근로자의
삶의 질 제고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렇지만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교섭권확보를 둘러싸고 노조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선진국의 비례대표교섭제 등의 도입을 통해 노조설립의 자유허용
문제와 교섭단위의 인정범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필요가 있다.

노조에 대한 정치활동 전면금지는 부당하지만 정치활동에 따른 폐해를
막는 임무는 사법 당국이 담당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가 되고있다.

그리고 제3자 개입문제의 경우 노동법보다는 상법 형법으로 제한하고
있는것이 일반적인 추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리해고제의 명문화나 변형근로시간제 도입과 같은
개별적 노사관계의 변화는 신축적인 인력활용을 가능케 함으로써 국내외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력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고의 남용가능성과 불규칙한 근로에 따른 신체적 피로내지 실질소득감소
등의 이유를 들어 노동계에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정리해고제나
변형근로시간제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는 제도로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경제 전체적으로는 긍정적 효과가
클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같이 정리해고제,변형근로및 근로자파견 등의 문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회복과 고용불안정이라는 서로 상충된 관계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매우 어려운 분야이다.

노동법 개정은 노사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변화가 가져다 줄 단기적 손익계산에 급급하여 노사 양측의 갈등이
심화되고 산업현장에서의 긴장이 고조된다면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발전과 명실상부한 선진 경제로의 도약은 요원해질 것이다.

갈등과 긴장이 증폭될수록 보다 나은 기업환경을 찾아 우리기업들은
해외진출을 가속화할 것이다.

이경우 국내에서의 고용창출이 감소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경제의
경쟁력에도 커다란 악영향을 미치게될 것이다.

노동법 재개정이 노-사-정의 대립적 이해를 절충내지 교환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노사관계개혁에 대해 서로 좁혀지지 않는 이해차이가
있고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필요성은 매우 고조되어 있기 때문에 조속한
시일내의 노동법 재개정을 위해서는 차선책으로 관련경제주체들의 대립적
이해를 절충적으로 수용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리해고 변형근로 노조전임자임금 파업중임금지급 대체근로 복수노조등이
노동법 재개정관련 주요 이슈들이다.

이중에서 노조전임자임금과 파업중임금지급 문제에서는 기업측의 의견이
최대한 존중되고 나머지 문제는 근로자측의 의견이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차선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대하여 노사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필요성을 공감하고 함께 고통을 분담해야만 난국에 처한
우리경제를 살려낼수 있는 실마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록 당장은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이 불가피하지만 그를 통해
국가경제가 기력을 회복할수 있다면 언젠가는 최선의 선택도 가능해지게
될것이다.

결국은 노사간에 인간적 신뢰와 유대가 형성되어야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노동법재개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수 있으나 노사관계의 개선은
앞으로도 많은 세월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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