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신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이 게재한 두번의 광고를
보았다.

첫번째는 개정노동법을 지지한다는 내용이었고 두번째는 검찰에
대한 항의였다.

두가지 모두 국민에 대한 호소문에 가까운 것으로서 사비를 써가며
그러한 광고를 낼 수 있었던 그분의 용기에 감탄했다.

원래 정치적인 이슈에는 관심이 적고 야당 여당을 떠나 중립적인 위치로
어느 누구든 정직한 정치로 국민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만 있도록 해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정치하는 사람이나 노동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조차 혼미상태에
빠져있는 듯싶다.

국내에 돌아와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선진국과 다른점을 뼈져리게
느꼈다.

극도의 이기주의 앞에 직업의식과 책임감도 없고 도덕심에 호소할
수 있는 여지도 강건너 등불일 뿐이었다.

한예로 대기업 이사급만큼 봉급을 받는 간부 직원이 있었다.

봉급은 대기업임원보다 더 받으며 직무 태만에 무단결근을 몇일씩
했다.

연락도 되지 않아 회사의 업무를 마비시켜 자칫하면 회사의 운명이
좌우될 상황까지 되었다.

얼마후 멀쩡한 표정으로 나타나길래 해고했더니 노동청에 고발했다.

그러데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노동청 직원이 기업주를 죄인취급을
하며 그 직원이 직장을 구할 때까지 봉급을 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약속을 어기고 회사를 나오지 않을 때 선불해준 봉급이나
스카우트비용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길도 없었다.

직원들은 또 자기들이 떠나고 싶을 땐 회사의 사정따윈 봐주지 않고
무자비하게 떠났다.

공휴일은 미국보다 많고, 한국에서 수트 1벌 만들 공임으로 미국에선
2벌반을 만들 수 있는데다 질은 전보다 떨어졌으니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걸핏하면 파업하면서 봉급은 그냥 달라고 하니 과연 한국이
선진국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대영제국이라고 기고만장했던 영국이 왜 내리막길을 갔으며 대처
수상이후 어떻게 상승무드를 타고 있는지 모두 깨달아야 한다.

여야는 또 사회적 어려움을 정치에 이용치 말아야 한다.

어느 누구할 것 없이 서로의 욕심을 죽이고 책임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비젼있는 나라의 건강한 국민으로서 21세기 국제화시대에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