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인 94년7월8일 북한의 김일성주석이 사망했을 때 북한주민들이
대성통곡을 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상낙원과 인민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겠다"던 사람이 그들 곁을 떠났을 때의 심정은 아마도 그럴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모습도 그렇지 않나 하여 걱정이 앞섭니다.

분명히 우리의 정치인들은 그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김일성주석이 생전에 한 이야기나, 얼마전 우리 정치인들이 한 "선진국으로
만들어 모든 국민들이 다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는 거의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또는 총리나 여당 야당의 정치인들이 그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남측이나 북측지도자들의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란 점을 보면, 우리는 한심스럽게도 한때나마 "아무
대책없는 낙관론"에 빠졌었나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천국과도 같은 "지상낙원"의 이야기나, "복지국가"가 되어 잘 살게
되리라는 이야기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그 처럼 짧은 시일내에 달성하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한 책임은 없었다고 봐야 합니다.

김일성주석이 그런 말을 했을 때 주변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비웃기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하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한 시각에서 그처럼 순진하게 "야 빨리 선진국이 되어
미국이나 일본처럼 떵떵거리며 살게되나 보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강아지가 제 꼬리를 보고 빙빙 돌다가 나중에 지쳐 주저 앉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즘 사람들의 눈에서는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누가 하루라도 빨리 나서 "내 잘못"이라고 자백하고 책임져주지 않나 하고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능력없는 사람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더욱 가슴아프게 할
뿐입니다.

만일 사랑하는 이가 떠나갈 때 아무 손도 쓸 수 없는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들은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용서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그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영광 또는 어려움에만 집착하는 사람이나 민족은 계속
현실 안주에 급급한 낙오자로 남을 뿐입니다.

이는 결국 다음 세대에도 우리의 자손들이 어리석은 조상들의 과오를
그대로 책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인생이나 국가의 장래나, 누가 대신 살아 줄 수도 또 책임져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시"나 하고 기대하는 사람들에겐 "역시"나 실망이 있을
뿐입니다.

이 점을 현실에서 정확히 인식해야만 우리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자
조상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윤승환 <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