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증오하고 저주를 퍼붓고 욕을 한다.

어찌 보면 그가 성의 문제에서 누구보다도 결벽증을 가지게 된 것은
자기의 생존방법이 가장 치사하고 구역질난다고 느낌으로써 더욱 결벽증
이라고 할 정도의 청결을 흠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코치는 정말 사귈수록 마음에 드네요. 지코치는 여러 방면에서
행동이 방정하고"

"방정맞고 깨끗하고 우아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 말씀이시지요?"

지코치가 유창하게 농으로 자기 말을 받자 김영신은 지영웅이 귀여워
죽겠다.

마음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 만큼 샤프한 놈이다.

기분과 생각이 통한다고 찬탄해 마지 않는다.

"밤에는 주로 무엇을 해요. 밤은 꽤 길잖아요? 가끔?"

김영신의 예의를 갖추어 묻는다.

다정하고 곰살가운 후원자처럼. 그러자 갑자기 지코치는 아픈 곳을 찔린
토끼처럼 흠칫한다.

그러나 김영신의 질문은 다분히 진정한 보살핌의 뜻을 담은
억양이었으므로, "무엇을 할것 같아요? 실로 6시부터 12시까지가 무척 긴
적도 있지요"

"무엇을 하실까? 생일은 일년에 한번일테니 밤낮 춤을 출 수도 없고
젊고 예쁜 애인은 없어요?"

설마 그녀는 그가 밤의 왕자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알아맞혀 보십시오"

지영웅은 그녀를 꽉 껴안으며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 본다.

키가 장대같이 큰 그는 언제나 여자들을 내려다 보게 낳아준 스탠드바의
여급이었다는 생모와 그의 아버지를 그때만은 지극히 고맙게 생각하며
우쭐해진다.

하이힐을 신는 모든 키큰 여자들에게 결코 꿀리지 않는 이 큰 키,
그것은 그의 장사밑천이면서 남자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유일한 신의
은총이었다.

십센티 높이의 하이힐을 신고도 올려다볼 수 있는 키큰 미남을 안은
김영신은 그 순간 명구에게 받은 자존심의 상처가 일시에 빠져 나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주머니에 현금은 없지만 그녀의 금딱지 카드는 얼마든지 쟈니에서는
현금처럼 통한다.

더구나 명구녀석은 이런데 와서 춤추는 것도 싫어했고 정말 더럽게
사람속을 푹푹 썩여준 대학생 애인이었다.

아이구 시원해라,그녀는 저절로 명구가 떠나간 것에 축배를 올리고 싶다.

"우리 그만 테이블로 가서 오늘밤 그대의 생일을 축복하는 건배를 해요"

그들은 돌아와 앉자 시켜논 안주와 술을 고픈 김에 취하도록 마셔댔다.

"나의 코치님의 귀빠진 날을 위해서"

사실 그의 생일은 오늘이 아니고 벌써 지나간지가 일년이 가까워온다.

그러나 그는 자기 합리화를 언제나 그럴싸하게 시킨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4일자).